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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지현 Oct 19. 2024

나는 무책임한 사람일까?

3부. 나는 무책임한 사람일까?

"제가 다음달 초까지 출근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려 여러분에게 미안해요.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을 수 있도록 대체자를 빠르게 알아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않아도 돼요. 정해지는 내용이 있으면 가장 먼저 공유드릴게요. "


팀장님이 퇴사 소식을 전달하였다. 아직 팀장님의 업무를 이어받을 후임자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주 팀장 제안을 내가 수락하였다면 오늘 이 시간 대체자는 나라고 공지가 되었겠지? 천만다행이었지만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부채감을 지우긴 어려웠다. 다음 팀장이 누구일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팀 동료들의 수근거림이 들릴 수록 괜시리 내 마음도 콕콕 찔렸다. 


갑작스러운 팀장님의 퇴사 소식과 당장 다음달부터 우리 팀 선장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은 팀을 모두 불안에 떨게 하였다. 각자만의 추리로 새로운 팀장님은 누가 될지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ㅇㅇㅇ팀에 있는 ㅇㅇ님이 오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ㅇㅇㅇ팀이랑 합쳐지고 그쪽 팀장님이 맡으실 것 같아요."


그 어느 경우의 수에도 내가 팀장이 된다는 추측은 없었다. 역시 이 친구들도 나를 팀 동료로만 보고 있었을 뿐, 팀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나는 팀장 제안을 받았단 사실을 평생 비밀로 할 참이었다. 팀장될 뻔하다 거절한 사람보다는 나도 이 친구들과 함께 ‘팀장이 사라져 불안한 팀원’의 입장에서 ‘다음 팀장님은 누가 될까?’라는 막연한 걱정만 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도무지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애써 외면한 체 이들의 불안에 같이 동조하고만 있었다. 어쩌면 내가 해결할 수도 있었을 문제였다. 팀이 어려운 상황이 될걸 알면서도 외면하는 듯한 기분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마음 속에서 날 괴롭히는 불편한 마음은 결국 죄책감이 되어 나를 콕콕 쑤시고 있었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전 회사 선배에게 연락을 하였다. 내가 타이타닉 호에서 침몰할까 걱정하셨던 바로 그 과장님이었다. 혼란스럽고 답답한 내 마음을 어느 한 곳에 속 편히 털어놓고 싶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이었다. 과장님이라면 가장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 선배였다. 이직하고 참 오랜만에 연락을 드리는 것이었는데도 과장님은 언제나 늘 그랬듯 가장 반가운 목소리로 연락을 받아주셨다. 


“하하하. 그니까 너가 벌써 팀장 제안을 받았다고?”

“네… 진짜 이게 말이 돼요? 전 진짜 상상도 못했어요.”


그동안 혼자 끙끙 앓고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을 과장님에게 털어놓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 과장님은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남의 속은 모르고 재밌는 에피소드로 들으시다니, 지금 웃을 일이 아니라며, 당사자는 너무 괴롭다며 나의 끝없는 하소연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그래서 아직 새로운 팀장님이 정해지진 않았거든요. 같은 팀 친구들이 우리 팀장 어디서 오냐고 불안해하는데 제가 괜히 찔리는거에요. 어쨌든 팀이 어려운데 제가 제 워라밸만 생각하느라 계속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제가 무책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요즘 좀 힘들었어요”

“지현이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 잘하고 못하는 걸 객관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인 거지”


잘 하고 못하는 걸 객관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건 무슨 뜻인걸까? 과장님이 보기에도 나에게 팀장은 맞지 않는 옷이란걸까? 과장님의 답변에 귀가 쫑긋하였다. 이건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이었다. 


“너가 지금 팀장 제안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책임지기 싫은게 아니라 너 스스로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직 그럴만한 자질이나 마음의 준비를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그런거야. 너가 생각했을 때 스스로 할 수 있다 싶으면 넌 하겠다고 말할걸? 야! 무책임한 사람이 퍽이나 야근수당도 안줬던 회사에서 맨날 혼자 야근하고 있었겠니?”

“그건 그렇죠…그동안 한 번도 무책임하단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지현이에게 워라밸이 중요해진 이유는 오히려 그간 일 때문에 너의 삶을 쉽게 뒷전으로 미뤄왔기 때문이기도 해. 그런 너를 스스로가 너무 잘 아니까 본능적으로 팀장 직책을 거부하는 거지. 잘할 자신은 없는데 팀을 망칠 수는 없으니까 몸과 마음을 갈아서 애쓸게 뻔히 보이잖아. 그냥 아직 너 스스로가 준비가 안된 상태일 뿐이야.”


내가 무책임한게 아니라는 과장님의 말이 감사했다. “너는 무책임한게 아니야”라는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말을 들으니 그간 나를 괴롭혀왔던 죄책감이라는 감정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오늘 상담 파트너를 잘 선택한 것 같다. 


“난 너가 솔직하게 잘 말한 거 같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킨다고 했다가 오히려 모두가 괴로운 상황이 될 수도 있어. 너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걸 잘 판단했던거라 생각해. 왠일로 너가 하기 싫단 소리도 했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잘했어!”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해주신 과장님의 쿨한 이야기에 웃으며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과장님의 위로 아닌 위로 덕분에 그간 나를 괴롭혔던 돌덩이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래. 나를 무책임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말자. 나는 오히려 너무 책임감이 강해서 내가 잘할 자신이 없는 자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내 삶을 쉽게 뒷전으로 둘 사람이다. 내 삶을 돌보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 해보자! 그렇게 조금씩 내가 맡은 영역에서 나의 능력을 키우다보면, 언젠가 팀장이라는 직책도 자신있게 감당할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지. 단지 그게 지금은 아닐 뿐이다. 준비되지 않은 나를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대신, 열심히 능력치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이 세상에서 나에게 그런 여유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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