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계속 오던 여름휴가 기간. 마지막 날 밤 해가 지는 시간 비가 그쳤다.
숙소 뒷마당이라도 산책을 가보자 무작정 나갔다.
초록색이 물기를 가득 머금어 싱그럽기까지 한 여름밤.
노랗게 물들어 가는 하늘과 그곳에 덩그러니 있던 나무 의자.
숙소 체크인을 할 때 날씨가 좋으면 숙소 곳곳에 사진 찍을 수 있게
해놓은 곳이 있는데 참 아쉽다고 말씀해 주시던 직원분의 말이 생각났다.
아마 날이 좋았다면 저 의자에 앉아 사진도 찍었겠지.
마치 이곳만 동화 속으로 들어온 거 같다.
근심 걱정 없이 오늘은 참 행복한 하루였다 말하며
엔딩을 보여주는 듯한.
한낮에도 회색빛 구름이 가득해
어두컴컴했는데, 그 비구름들은 다 어디 가고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보여주다니.
한참 미술을 배우던 학창 시절 한 가지 색으로
나뭇잎을 다 채우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자연은 단 하나도 같은 색이 없어.
빛과 바람에 따라 순간마다 색이 달라지거든.
오래 관찰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성격이었던 거 같다.
한 물체의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해 그렇게 색을 칠해버렸다.
이 오랜 습관을 바꾸기 위해 자연 속에 가만히
바라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1분 전 구름의 모양과 색이 아주 미세할지라도 1분 후 달라졌다.
아주 작은 바람에 나뭇가지의 잎들의 색이 빛에 따라 달라진다.
땅에 있는 작은 꽃들조차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다 다른 색을 보여준다.
그림을 처음 배울 때 빛과 그림자를 가르쳐 준다.
빛이 오는 방향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과 방향을 설정해야 자연스럽게 사물을 그릴 수 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전, 처음 빛이 오는 방향을 설정한다.
그림이 어색해 보일 때 선생님은 늘 물어보시는 질문이 있다.
'빛이 지금 어디서 오고 있니?'
빛이 오는 방향이 설정되면, 그림자의 방향도 정해진다.
그리고 빛의 세기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와 색이 정해진다.
자연을 보는 게 재밌는 게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날의 날씨에 따라
빛과 바람, 그리고 색이 달라진다.
내가 본 그날의 의자와 배경은
그 누구도 똑같이 다시 볼 수 없을 거다.
산책을 하며 만났던 나무들도, 꽃도, 늘 같은 색깔일 수 없는데.
나는 왜 늘 긍정적인 색이기만을 원했을지.
나는 늘 한결같이 단단한 사람이길 원했는지.
내가 알고 있는 내 색깔이 이 햇빛 아래에 같은 색을 나타내고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만큼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똑같은 색을 가질 수 없는 자연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길게 자란 풀들을 헤치고 들어가 나무 의자 옆에 서서
노을 지는 하늘만 바라봤었다.
낮 동안 내내 비가 와서 흥건히 젖은 나무 의자지만,
그냥 털썩 앉아 이 풍경 속에 녹아들어볼걸.
옷은 빨면 되겠지만 이 색깔들은 다시 볼 수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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