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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내 인생의 하프타임

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by 정글
"끝난 게 아니다. 시작도 하지 않았다."
축구의 하프타임처럼 인생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축구 경기에는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하프타임이 있다. 이 짧은 휴식 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전략을 세우고 기운을 북돋우며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다. 하프타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후반전의 승패가 갈린다.


2002년 월드컵 한국 vs 이탈리아 경기에서 1:0으로 뒤지던 한국은 하프타임을 거쳐 후반전에 두 골을 넣으며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2005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리버풀은 AC 밀란에 0:3으로 끌려가던 하프타임 후 3골을 연속으로 넣어 동점을 만들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며 ‘이스탄불의 기적’을 일궈냈다. 2018년 월드컵 결승에서 프랑스는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전반전 2:1 리드를 후반전에 4:2로 완성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하프타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역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인생의 하프타임

인생도 축구와 다르지 않다. 젊은 시절 성공을 맛봤더라도 중년 이후 위기를 맞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젊은 날 고난을 겪었어도 나이 들어 빛을 보는 이들도 많다. 내 인생도 그랬다. 55세가 되기 전까지, 술에 찌든 삶은 나를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인생의 하프타임을 맞았다. 그 하프타임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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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찌든 전반전

2017년 6월, 비 오는 어느 날. 퇴근 후 동료들과 막걸리에 파전을 곁들여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2차, 3차로 이어지며 정신을 잃었다. 다음 날 아침,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속이 메스꺼웠다. 화장실 거울 속, 충혈된 눈과 헝클어진 흰머리의 낯선 모습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나인가?” 샤워기 물줄기 아래 웅크린 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수없이 다짐했지만, 늘 다짐으로 끝났다.


지갑에서 나온 카드 영수증에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미워졌다. 결국, 지갑 속 카드 7장을 모조리 잘라버렸다. 2017년 6월 30일. 새벽 4시 30분, 금주 선언문을 썼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 그 순간, 내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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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 금주와 새로운 도전

술을 끊는 첫날, “하루만 참아보자”며 시작했다. 3일, 일주일, 21일, 30일… 체크리스트에 안 마신 날을 표시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퇴근 시간이면 술자리를 찾던 습관을 버리고, 책상을 정리한 뒤 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술친구들은 점차 연락을 끊었고, 세상이 텅 빈 듯 공허했다. “술을 굳이 끊어야 하나? 적당히 마시면 되지 않나?” 유혹이 밀려왔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SNS에서 부산의 독서모임 특강 소식을 발견했다.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3P 자기경영연구소에서 주최한 특강에 아내와 함께 참여했고, 박상배 독서 전문가의 강의는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그 후 독서경영리더과정을 수강하며 독서모임을 직접 운영해야 하는 과제를 받았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동료와 지인들을 모아 부산 동래우체국 응접실에서 첫 모임을 시작했다.


독서모임, 함께 성장하는 여정

첫 독서모임은 어색함의 연속이었다. 특히 새로 온 강준이 선배와 전세병 선배는 말수가 적고, 억지로 끌려온 듯했다. 하지만 두 번째 모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강준이 선배가 데려온 정희정 선배는 활기찬 에너지로 모임을 이끌었다. 점차 직원들, 심지어 국장까지 합류하며 모임은 점점 커졌다. 응접실이 비좁아지자 장소를 회사 구내식당, 나중에는 회사외부 위드경매학원으로 옮겼다. 부산큰솔나비 독서모임은 8년째 이어지고 있다.


Y 우체국장으로 보직을 받았을 때도 지혜나비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엔 직원들이 마지못해 참여했지만, 이영숙 팀장의 열정과 적극적인 참여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퇴근 후 자기계발 스터디그룹을 운영하며 시간 관리, 목표 관리, 업무 관리 등을 가르쳤다. “국장님 덕분에 무기력증이 사라졌어요.” 이 팀장의 환한 미소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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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변화, 그리고 나의 성장

독서모임은 조직 분위기를 바꾸고, 직원들을 하나로 모았다. S 우체국에서는 비정규직 FC(보험설계사)들까지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보험 실적이 크게 향상되었다. 조직이 활성화되자 뜻밖의 소식이 왔다. 최단기간 4급(서기관) 특별승진의 행운을 얻었다. 변화에 저항하는 노조 반발도 있었지만, 지부장과 식사와 차를 마시며 친해지려 노력하며 불만 불씨를 하나씩 꺼나갔다.


용기 있는 시작

술을 끊었을 때 처음엔 공허함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독서와 자기계발로 채우며 더 풍요로운 삶을 찾았다.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조직 전체가 함께 성장했다. 중독, 좌절, 실패는 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선택이다. 독서모임이 내 전환점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운동, 그림, 봉사활동, 새로운 기술 습득......,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55세,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의지와 실행이었다. 축구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막판 역전골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아픔과 고난은 더 강한 나를 위한 밑거름이었다. 인생 전반전은 끝이 아니다. 진짜 게임은 하프타임 이후에 시작된다.


지인들이 “니는 늙지도 않고 더 젊어지는 것 같노?”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웃으며 속으로 답한다. 겉만 아니라, 내 속은 더 젊어지고 있다고!


내일 20화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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