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짐을 들여놓자 방은 훨씬 협소해 보였다. 계약서에 적힌 평수보다 적어도 절반쯤. 냉장고를 들여놓고 침대를 벽에 바짝 붙이는 사이 누군가 부지런히 방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컴퓨터까지 놓으니 옷장 문이 절반밖에 열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동선과 배치를 고려하지 않고 욱여넣었다. 창문 앞까지 짐이 들어차자 방 안이 어둑해졌다. 형광등을 켜 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빛은 천장까지 쌓인 상자 위에 닿을 뿐 뻗어 나지 못했다. 한참 찾아 헤매던 수저는 안방구석에, 이불은 싱크대 아래에 있었다. 콘센트를 찾아 서랍장 위에 올라간 공영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따져 물었다.
“밥은 어디서 먹지?”
탁자는 아직 밖에 있었다.
이삿짐을 다 내려놓지 못한 트럭이 날카로운 경적을 울렸다. 집 안을 둘러보던 인부가 이기죽거리며 선심 쓰듯 말했다. 탁자 정도는 처리해 줄 수 있다고. 나는 공영을 향해 중얼거렸다. 아까는 웃돈까지 요구하더니 순 도둑놈 심보야. 그사이 탁자는 복도에 뒀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은 공영은 두리번거리다가 멈칫했다.
“믹서는 버리고 오기로 했잖아!”
이사 전 각자 물건 중 겹치는 건 골라냈다. 청소기나 커피포트 같은 것들. 함께 살기로 한 이상 두 개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무난한 디자인에 기본 기능에 충실한 믹서와 어디서든 튀는 색깔인데다 칼날도 약했지만 다양한 기능이 있는 믹서 사이에서 망설임이 길어졌다. 공영의 말마따나 최신형이거나 비싼 걸 남겨 두기로 하자 정리할 믹서가 분명해졌다. 그 순간은 선명한 진심이었지만 막상 내놓으려고 하니 영 내키지 않았다.
“둘 다 두고 쓰면 안 될까?”
공영은 대꾸도 없이 켜켜이 쌓인 옷가지를 타고 넘어 작은방으로 건너갔다. 곧 탁상용 선풍기와 스탠드를 내던졌다. 멀쩡해 보이는 걸 또 버리려는 모양이었다. 겨우 한쪽 날개가 부러졌다거나 긁힌 자국이 있다는 이유였다. 거침없이 내놓는 공영은 어딘지 모르게 뭐든 함부로 대할 사람처럼 느껴졌다. 거의 시들었어도 반대쪽에 여전히 푸른 이파리가 남아 있는 화분까지 밀쳐 둘 땐 나도 모르게 눈까지 흘겼다. 낡은 데다가 좁기까지 한 방 때문이라고 생각해 봐도 우중충하게 쪼그라든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내놓기로 한 것은 겨우 의자뿐이었다. 자세만 바꿔도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서 앉을 때마다 긴장해야 하는 의자였다. 공영은 긴장하면서까지 앉아야 하는 의자는 버려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방 안에서 기어이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면 의자가 빠질 순 없을 것이었다. 주저하는 내게 공영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똑같은 의자를 살 수 있으니 미련 두지 말라고 했다. 어쩐지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중에야 다 같은 의자가 아니라고 타이르지 못했던 걸 후회했다. 그럼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랑 만날 거냐고 물었어야 했다. 그래야 의자를 버리는 게 얼마나 괴상한 일인지 깨달았을지도 몰랐다.
쓰레기장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를 보니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고 돌아와 의자에 기대앉아 잠들었던 날이, 처음 내 방에 들어왔을 때 의자에 앉아서도 시선을 가만두지 못하던 공영이 송두리째 뽑혀 내동댕이쳐진 것 같았다. 그때 공영은 해사한 웃음으로 내 방이 꼭 우리 둘만의 박물관 같다고 했다. 이제는 누가 사는지 헤아릴 수 없는 공공시설이 된 듯했다. 그래도 필요 없는 것을 내다 버리는 쪽으로 끊임없이 기울어져야만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한동안 어쩌면 십수 년 동안 그대로일지 몰랐다. 늘여 가는 재미가 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