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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탁자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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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석순 Sep 19. 2023

탁자 (3)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짐을 들여놓자 방은 훨씬 협소해 보였다. 계약서에 적힌 평수보다 적어도 절반쯤. 냉장고를 들여놓고 침대를 벽에 바짝 붙이는 사이 누군가 부지런히 방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컴퓨터까지 놓으니 옷장 문이 절반밖에 열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동선과 배치를 고려하지 않고 욱여넣었다. 창문 앞까지 짐이 들어차자 방 안이 어둑해졌다. 형광등을 켜 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빛은 천장까지 쌓인 상자 위에 닿을 뿐 뻗어 나지 못했다. 한참 찾아 헤매던 수저는 안방구석에, 이불은 싱크대 아래에 있었다. 콘센트를 찾아 서랍장 위에 올라간 공영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따져 물었다.

  “밥은 어디서 먹지?”

  탁자는 아직 밖에 있었다. 

  이삿짐을 다 내려놓지 못한 트럭이 날카로운 경적을 울렸다. 집 안을 둘러보던 인부가 이기죽거리며 선심 쓰듯 말했다. 탁자 정도는 처리해 줄 수 있다고. 나는 공영을 향해 중얼거렸다. 아까는 웃돈까지 요구하더니 순 도둑놈 심보야. 그사이 탁자는 복도에 뒀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은 공영은 두리번거리다가 멈칫했다.

  “믹서는 버리고 오기로 했잖아!”

  이사 전 각자 물건 중 겹치는 건 골라냈다. 청소기나 커피포트 같은 것들. 함께 살기로 한 이상 두 개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무난한 디자인에 기본 기능에 충실한 믹서와 어디서든 튀는 색깔인데다 칼날도 약했지만 다양한 기능이 있는 믹서 사이에서 망설임이 길어졌다. 공영의 말마따나 최신형이거나 비싼 걸 남겨 두기로 하자 정리할 믹서가 분명해졌다. 그 순간은 선명한 진심이었지만 막상 내놓으려고 하니 영 내키지 않았다.

  “둘 다 두고 쓰면 안 될까?”

  공영은 대꾸도 없이 켜켜이 쌓인 옷가지를 타고 넘어 작은방으로 건너갔다. 곧 탁상용 선풍기와 스탠드를 내던졌다. 멀쩡해 보이는 걸 또 버리려는 모양이었다. 겨우 한쪽 날개가 부러졌다거나 긁힌 자국이 있다는 이유였다. 거침없이 내놓는 공영은 어딘지 모르게 뭐든 함부로 대할 사람처럼 느껴졌다. 거의 시들었어도 반대쪽에 여전히 푸른 이파리가 남아 있는 화분까지 밀쳐 둘 땐 나도 모르게 눈까지 흘겼다. 낡은 데다가 좁기까지 한 방 때문이라고 생각해 봐도 우중충하게 쪼그라든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내놓기로 한 것은 겨우 의자뿐이었다. 자세만 바꿔도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서 앉을 때마다 긴장해야 하는 의자였다. 공영은 긴장하면서까지 앉아야 하는 의자는 버려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방 안에서 기어이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면 의자가 빠질 순 없을 것이었다. 주저하는 내게 공영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똑같은 의자를 살 수 있으니 미련 두지 말라고 했다. 어쩐지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중에야 다 같은 의자가 아니라고 타이르지 못했던 걸 후회했다. 그럼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랑 만날 거냐고 물었어야 했다. 그래야 의자를 버리는 게 얼마나 괴상한 일인지 깨달았을지도 몰랐다.

  쓰레기장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를 보니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고 돌아와 의자에 기대앉아 잠들었던 날이, 처음 내 방에 들어왔을 때 의자에 앉아서도 시선을 가만두지 못하던 공영이 송두리째 뽑혀 내동댕이쳐진 것 같았다. 그때 공영은 해사한 웃음으로 내 방이 꼭 우리 둘만의 박물관 같다고 했다. 이제는 누가 사는지 헤아릴 수 없는 공공시설이 된 듯했다. 그래도 필요 없는 것을 내다 버리는 쪽으로 끊임없이 기울어져야만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한동안 어쩌면 십수 년 동안 그대로일지 몰랐다. 늘여 가는 재미가 없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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