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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탁자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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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석순 Sep 19. 2023

탁자 (4)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공영과 내가 생각하는 ‘버릴 것’의 기준은 번번이 어긋났다. 내가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 물건인지, 선물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날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차례차례 떠올리고 있으면 공영은 일 년에 몇 번쯤 꺼내 썼는지, 중고 시세가 얼마쯤이고 변동 폭이 큰지, 대신할 만한 게 있는지 가늠해 보는 식이었다. 어느 순간 방에서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나 연간 유지비까지 계산해 봤다. 기준은 좀처럼 겹치지 않았다. 기준을 잡아 갈수록 내놓을 건 마땅찮았다. 나중에는 어디서 샀는지, 왜 여태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없어서 간직해야 했다. 분명 쓸모가 있어 남겨 뒀을 테니 버리고 나면 얼마 뒤 난감한 상황과 마주할지도 몰랐다. 그러다 보면 의자도 가져왔어야 했다는 후회에 닿았다.

  “의자라도 내놔서 다행인 거야.”

  고개를 젓던 공영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훤히 꿰뚫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 같았다.

  공영은 찌그러진, 하지만 몇 번의 여행은 버텨 줄 수 있을 트렁크도 현관 쪽으로 밀어놓았다. 언젠가 여행 중에 서둘러 샀던 것이었다. 일정이 촉박해서 고를 것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가져왔다. 날씨는 점점 사나워졌고 쇼핑백은 한쪽 손잡이가 찢어져 주춤거릴 시간이 없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야 트렁크가 초록색이고 지나치게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공영은 내놓아야 한다고 일축했다. 우리의 첫 여행이었다고 덧붙여 봐도 흔들리지 않았다.

  “트렁크가 하나쯤 있어야지.”

  “그때 가서 생각해도 돼.”

  “왜 자꾸 치우라고만 해!”

  “그럼 탁자는 계속 밖에 둘 거야?”

  겨우 집 안으로 들어온 탁자는 화장실 문을 막고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옆으로 걸어야 했다. 해외 유명 디자이너 작품을 교묘하게 베낀 탁자였지만 알아채는 사람은 드물었다. 사정을 알고서도 살 만큼 저렴했다. 무늬나 두께의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이라 나중엔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렸다. 한때 SNS에 정품과 구별하는 법이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처음에는 생활 상식이었지만 어느 순간 유머로 분류되었다. 유머는 이내 조롱이 되어 모조품이 아니라 정품을 비싸게 산 사람들을 향해 날을 세웠다.

  탁자는 식탁으로도 책상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어디에 둬도 있는 줄 모르게 도드라지지 않았다. 언젠가 지진이 났을 때 내가 가진 것과 같은 모양의 탁자 아래로 아이가 기어 들어간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덩달아 탁자까지 유명해지기도 했다. 정품이었는지 위조품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탁자는 양쪽을 펼치면 4인용으로도 쓸 수 있었다. 대개 접어 두었지만 언제든 입맛에 맞게 바뀔 수 있다는 데에 이목이 쏠렸다. 그쯤 나는 나중에 태어날지도 모를 아이를 어렴풋이 떠올렸다. 높낮이 조절도 자유롭다는 데에서 내 생각은 단단해졌다. 아이가 자라면 적당한 높이로 맞춰 주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위험한 순간 아래로 들어가 몸을 피할 수도 있었다. 노파의 말처럼 앞날은 모르는 거고 그게 아이일 수도 있었다. 그때까지 버텨 줄 만큼 튼튼해 보이진 않았지만 제품의 주요 특징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 모든 게 탁자를 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였지만 공영은 비스듬히 돌아앉았다. 주먹 위에 툭툭 불거진 힘줄이 여간 고집스러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상판이 기울어지기까지 하자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공영이 정한 확고한 기준은 쓸 수 없는 건 버리자는 것이었다. 한쪽 손잡이가 깨진 쟁반은 쓸 수 있으니 놔두자고 한 다음부턴 온전한 모습이 아닌 것으로 단단히 못 박았다. 일부가 망가져도 멀쩡한 부분이 많으니 쓸모 있을 거라는 항변은 통하지 않았다. 탁자라고 예외일 순 없었다.

  쓰레기장까지 가는 내내 서로 리듬이 맞지 않았다. 빨리 내놓으려는 공영과 우물쭈물하던 내가 맞물리지 못해 균형이 깨지기 일쑤였다. 순간 탁자가 한쪽으로 치우쳤다. 그 바람에 탁자가 배를 찔렀다. 공영은 한쪽 팔을 번쩍 들어 올려 평형을 맞추려 애썼다. 그럴수록 탁자는 도리어 내 쪽으로 더 쏠렸다. 한쪽으로 치우친 탁자에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지만 도통 알 수 없었다. 바닥에 부려놓았을 때 탁자는 여기저기 흠집이 가득했다. 밖에 두고 보니 헐값에 내놓아도 선뜻 가져가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음 날 노파의 집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있어도 된다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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