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창문을 열었을 때 종일 쪼그리고 앉아 지워 낸 곰팡이 자국이나 요란하기만 할 뿐 수압은 형편없는 수도꼭지는 별거 아닌 일로, 적어도 견딜 만한 거로 바뀌었다. 창밖으로 노파의 집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정말 반지하보다 나은 건지 헷갈렸다. 이제껏 함정에 빠져야만 끝나는 게임을 해 온 기분에 휩싸였다.
담 끝까지 빈 병과 우유 팩,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한쪽에는 누군가 자고 일어난 흔적처럼 이불이 구겨져 있었다. 누런 베개와 물병이 뒤엉켜 있었고 그 위에 장난감 기차와 책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달나달한 책은 제목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망이었다. 대문 뒤도 빽빽하긴 매한가지였다. 시계는 엉뚱한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섯 시간쯤 느리다고도 빠르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자 노파는 시간이 어그러진 어디쯤 제멋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 같았다.
멀리 수레를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노파가 느릿느릿 나타났다. 콧노래와 들뜬 표정은 여전했다. 대문 앞에 수레를 세워 두더니 유리병과 리모컨을 차례차례 꺼내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라디오는 어루만지다가 잠시 품고 있었고 옷걸이는 허공에 대고 흔들었다. 그다음 담을 넘어 집 안으로 밀어 넣는 과정이 오래전부터 내려온 의식처럼 경건해 보였다. 양초를 끝으로 수레를 싹 비운 노파는 한쪽에 비스듬히 세워 둔 사다리를 벽에 대고 올랐다. 담 끝에 올라서서는 사다리를 들어 올려 물건들 사이에 포개 놓았다. 사다리는 물건들이 입을 벌려 집어삼킨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그쯤에야 왜 창문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라고 쓰여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사이 노파는 사라졌다. 빈틈없는 물건들 사이 어디로 파고 들어간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틈이라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노파의 집을 두고 오래전부터 많은 시선이 얽혔다고 했다. 아이들은 귀신의 집이라고 불렀고 그때마다 부모들은 얼씬거리지 말라며 눈을 홉떴다. 박물관 같다는 아저씨 옆에서 누군가 열정이나 방송국 제보 거리를 읽어 내기도 했다. 산이나 무덤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았다. 노인들은 저렇게 늙으면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한꺼번에 혀를 찼다. 흔히들 손쉽게 쓰레기 집으로 불렀다. 공영은 발음할 때마다 쌍시옷에 힘을 주고 미간을 잔뜩 좁혔다. 그때마다 노파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어서 매몰찬 눈빛으로 굉음을 내며 울부짖었다.
“쓰레기? 다 쓸 데가 있어! 왜 없어? 어? 왜! 뭣도 모르는 게!”
노파는 서슴없이 악다구니까지 썼다. 진심인 듯했다. 노파의 집 담벼락에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빌라 입구에 써진 것보다 더 굵고 단단한 글씨였다. 쓰레기 집하장으로 착각한 사람들을 향한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