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공영은 스웨터마저 의류 수거함에 버리고 돌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놓을 때마다 간곡히 허락을 구하더니 곧 양해를 바라는 정도에서 일방적인 통보로 이어졌다. 그나마도 아예 생략해 버리기 일쑤였다. 딱히 숨기려는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캐물어 봐도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뭐 그런 걸 여태 갖고 있어. 유행도 한참 지났던데. 다른 스웨터도 많잖아.”
스웨터는 헐렁해서 입을 때마다 걸음이 경직되었고 군데군데 올도 풀려 있었다. 바로잡으려고 들면 반대쪽도 풀려 나가 내버려 뒀더니 어느덧 볼품없고 남루해졌다. 그래도 어떤 기준으로도 버릴 것은 아니었다. 공영이 첫 월급을 받아 선물해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상기시켜줘도 공영은 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난폭하게 내팽개쳤다.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기로 했잖아.”
우리의 기준은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남겨 둘 각오로 신중하게 버릴 만한 것을 골랐다. 하지만 공영은 모든 것을 다 버리겠다는 결심 끝에 엄격한 기준으로 남겨 둘 것을 가려냈다. 그러니 오래전 매일 들고 다니던 디지털카메라를 서랍에 넣어 두면 공영이 알아채고 끄집어냈다. 무던하고 어떤 면에서는 둔한 줄 알았는데 버리는 데 있어선 성실을 넘어 열성적이기까지 하다는 걸 몰랐다. 공영이 교묘하게 숨겨 온 건지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건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방이 비워질수록 공영과 나는 멀리 떨어져 앉았다. 거리를 두고 보면 공영은 이 방에 누군가를 대신해 들어온 사람처럼 낯설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탁자처럼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었다.
공영은 계약 전 이미 앞집 노파에 대해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것까지도. 어쩌면 이 집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기보단 선택지가 하나뿐인 추첨함을 무심결에 휘저은 결과에 가까울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 노파의 집에 익숙해지고 무뎌지면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였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는커녕 더 나쁜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노파의 집에 개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개는 자전거나 서랍장 사이를 메웠다. 빈자리가 있으면 어디든 비집고 들어가 앉아 바깥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꼬리를 세웠다. 골목을 어슬렁거리던 개들이 스스로 담을 넘었을 리 없었다. 아무래도 노파가 주워 오는 모양이었다. 버림받아 떠도는 개들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한쪽에선 훔쳐 온다는 괴담이 나돌았다. 그쯤 집에 쌓아 둔 물건도 온전히 쓰레기장에서만 가져온 게 아닐지 모른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 속에 뭘 숨겨 뒀을지 알게 뭐냐고도 수군거렸다. 그러고 보니 공영이 야근을 핑계 삼아 방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한 날은 개 짖는 소리와 정확히 맞물렸다.
얼핏 보면 개들은 신문지 더미나 세숫대야와 별다른 것도 없었다. 다만 인기척이 느껴지면 사납게 울부짖었다. 몇몇은 그때마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소리쳤지만 울음소리에 금세 묻혔다. 잦아들 만하면 한쪽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게 구호라도 되는 것처럼 일제히 짖어 댔다. 그중 “악악!”거리는 소리도 있었다. 사람인지 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