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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탁자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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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석순 Sep 19. 2023

탁자 (9)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며칠 만에 들어온 공영은 뒤척이다가 서너 시쯤 깼다. 한 번 물러간 잠은 어지간해선 다시 돌아오지 않는 듯했다. 지나가던 취객이 담을 발로 찼거나 대문을 건드렸을지도 몰랐다. 별다른 자극이 없어도 개들은 시도 때도 없이 컹컹거렸다. 잠깐 조용해지는가 싶어도 어느 순간 아예 방을 향해 노골적으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던졌다. 창을 닫고 커튼을 쳐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새 공영은 누워서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잠드는 일마저 성실을 넘어 열성을 쏟겠다는 듯이. 옆에서 나도 허공을 잡듯 주먹을 움켜쥐고 누웠다. 이제부터라도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그와 상관없이 개들은 짖고 또 짖었다. 

  공영은 겨우 옷만 갈아입은 채 며칠 치 속옷을 챙겨 나섰다. 이후에는 사나흘씩 들어오지 않을 때도 적지 않았다. 그저 공영이 없을 뿐인데 방 안은 텅 빈 것 같았다. 냉장고를 들어내고 거실을 도려내도 그만큼 허전하진 않을 것이었다. 며칠 만에 집을 구하러 다닐 때보다 더 수척한 얼굴로 공영이 돌아온 날에도 개들은 끊임없이 악악거렸다. 그날따라 유난히 매서운 울음이 사이렌 소리처럼 이어졌다. 누가 담뱃불이라도 던져 줬으면 싶었다. 

  너울거리던 숨소리가 차츰 거칠어지더니 공영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이번에 나가면 또 며칠 아니, 몇 주일 만에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개 짖는 소리는 골목 전체를 집어삼킬 것처럼 거대하게 부어올랐다. 노파가 먹이도 제때 주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러자 울음소리가 신음을 지나 어서 구해 달라는 신호처럼 들렸다. 제대로 돌봐 주기만 하면 짖지 않을지도 몰랐다.

  “역시 데려와야겠지?”

  모로 누운 공영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막상 대문 앞에 서니 어디를 두드려야 할지 망설여졌다. 초인종이 있어야 할 자리까지 상자와 잡지가 쌓여 있었다. 그 순간에도 개들은 우렁차게 짖었다. 몇몇은 담 끝에 머리 내밀고 맹렬하게 으르렁거리면서도 아래로 떨어질까 봐 사이사이 뒷걸음질 치기를 반복했다. 생각보다 훨씬 작은 개였다. 그 뒤로 한쪽 눈을 제대로 못 뜨거나 털이 빠지고 야윈 개들이 보였다. 더 다가가려다 앙칼진 울음에 한 걸음 물러났다. 머뭇거리는 사이 멀리 어정거리며 오는 노파가 보였다. 여전히 부지런하고 건강해 보였다. 일순 개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손수레 끄는 소리가 들렸다. 노파와 가까워지자 한쪽 손에 개 한 마리가 들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는 언제라도 짖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눈을 부라렸다. 개가 더 늘어난다면 앞으로는 잠깐잠깐 고요하던 시간마저 없을지도 몰랐다.

  “신고할 거예요.”

  노파는 개를 담 위로 던졌다. 개는 형체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알아서 물건 사이를 파고 들어갔을 것이다. 노파는 굼뜨게 다가왔다. 가만히 두면 나도 쓰레기 속에 내던져질지 몰랐다. 탁자를 올려놓은 노파라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신고? 얼마든지!”

  민원도 그때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담당자가 나와 성가신 표정으로 주의를 주고 형식적인 사과를 받아 내는 정도였다. 그때마다 노파는 겨우 골목 밖으로 나온 쓰레기만 치웠다. 그나마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 노파가 법을 어긴 건 아니었다. 자기 땅에 지은 집에 쓰레기를 쌓아 놓든 개를 기르든 상관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담당자의 표정은 노파가 아니라 새로운 민원인을 향했다. 기존에 살던 사람들은 민원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진즉 알았지만 이사 온 사람들은 달랐다. 기관에 신고하면 해결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담당자는 지나가는 말로 반쯤 농담 삼아 속살거렸다. 차라리 노파가 사람을 때리거나 개가 물길 바라는 게 낫다고.

  “그럼 처벌할 명분이라도 생기니까요.” 

  노파는 나를 지나쳐 사료가 담긴 자루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진 걸음이었다. 노파를 둘러싼 소문은 점점 무성해져 악담이 되었다. 내기를 거는 무리도 있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잃어버렸다가 결국 못 찾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난해서 종이 한 장 못 버린다거나 어렸을 때 버림받아서 버려진 물건을 모으는 거라는 어림도 제법 그럴듯했다. 죄를 짓고 스스로 내린 벌을 받는 중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소문을 전해 주던 공영은 뭐가 맞는지 물어 왔다. 나중엔 목돈을 내기에 건 사람처럼 집요해졌다. 여전히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나는 도리어 되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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