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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탁자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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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석순 Sep 19. 2023

탁자 (7)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공영은 작년 여름 누군가 트럭을 몰고 왔다고 전해 줬다. 트럭에서 내린 남자는 노파와 두어 발자국 떨어진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둘 사이 간격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노파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다 보니 남자도 경계가 불분명한 얼룩 같았다. 꾹 눌러쓴 모자 밑에 드러난 턱과 뺨은 남편 같기도 했고 수염이 없어서인지 막냇동생쯤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간 노파에게는 이혼, 입양, 고아, 사업 실패, 사기 등 붙을 수 있는 수식어는 다 들러붙었다. 남자가 등장하자 난데없이 폭력 전과까지 끈끈하게 엉겨 붙었다. 그러자 지금껏 서먹하기만 했던 노파가 불현듯 빤해졌다.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 트럭 뒤에서 삽과 포대를 든 사내들이 여럿 내렸다. 빌라 사람들은 쓰레기를 치우러 온 사람들이라고 불렀지만 노파는 도둑놈들이라고 소리쳤다. 쓰레기가 포대에 담겨 트럭에 실릴 때마다 노파는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표정이었다고 했다. 노파 혼자 사내들을 힘으로 당해 낼 수 없었다. 막아서고 소매를 붙잡아도 사내가 몸을 틀면 맥없이 나동그라졌다. 반나절 동안 겨우 대문에서 현관까지 치워 사람이 드나들 만한 길이 생겼다. 하지만 그쯤에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문을 막아선 노인이 칼을 들고 손목을 겨눴기 때문이다. 기관에서 나온 담당자가 민원을 들먹거리며 칼은 또 왜 이렇게 많으시냐고 물었을 때 언젠가 다 쓸모가 있을 거라고 했던 칼이었다. 그쯤 공영이 숨을 고르며 흐리멍덩한 목소리를 냈다.

  “무슨 사정이었을까?”

  내게 묻는 것도 아닐 텐데 괜히 생각에 잠겼다. 공영은 뭔가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듯했다. 어쩌면 우리가 선택한 집이 함정은 아닐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끝내 마땅한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밖에서 현관까지 뚫렸던 길은 채 한 달을 가지 못했다. 노파는 비워진 집을 기념하려는 것처럼 전보다 더 많은 물건을 악착같이 주워 모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보다 공고하게 쌓아 올렸다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삽을 든 사내 몇 명만으로 턱없이 부족했다. 적어도 굴착기 한 대쯤은 들어와야 할 듯했다. 

  모아 둔 칼이 서른 자루쯤 되었다고 할 때 공영은 표정을 다 쓴 사람처럼 어딘가 텅 비어 있었다. 공영과 함께 있으면 꽉 찬 느낌일 줄 알았는데 도리어 시도 때도 없이 구멍이 뚫린 듯한 얼굴과 마주쳐야 했다.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끝내 채울 수 없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끈질기게 들러붙었다. 공영은 침대 끝에 걸터앉아 아무 소리도 덧붙이지 않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등이나 종아리 어디쯤 대형 폐기물 스티커가 붙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신고한 날짜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날 듯했다.

  공영은 여전히 버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방에는 여유가 생겼지만 공영이 버리는 기준은 도리어 느슨해졌다. 고장 난 마늘 다지기뿐만 아니라 향이 날아가 가까이 코를 대지 않으면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디퓨저와 매일 밤 그날의 피로를 풀고 자겠다는 다짐 끝에 샀지만 결국 한 번도 쓰지 않는 안마기까지 내놓았다. 나중에는 기준을 설명해 주는 과정마저 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공영이 골라 놓은 쿠션이나 편수 냄비를 멀뚱히 보고 있으면 공영은 노파를 찾아왔다던 남자처럼 굴었다.

  “깊이 생각하지 마. 생각만 줄여도 나아질 거야.”

  그 목소리가 도리어 생각을 부풀렸다. 

  나중엔 아예 버리는 날을 따로 정해 놓았다. 기필코 이 방을 다 비워 버릴 작정이라는 듯이. 언제부턴가 표정이나 감정까지 최소한의 것만 남겨 둔 듯했다. 대화 사이는 건너뛰고 생략하는 부분이 많았다. 채워 보려고 애써 봤지만 결국 오해만 쌓일 뿐 소용없었다. 그사이 공영은 더 빠르게 비워 냈다. 나는 상자만이라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치워 뒀다. 공영이 상자까지 의미 없는 것으로 분류하지 않기를 바랐다. 

  “믹서는 언제 버릴 거야?”

  어쩌면 이 방에 사람이 둘이나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몰랐다. 전자레인지나 세탁기처럼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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