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탁자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고꾸라질 듯했다. 한 발짝 떨어져 비껴 보니 아래에 3단 책장이 깔려 있었다. 한쪽 다리에 기댄 저금통은 엉성하게 맞물렸다. 저금통 끝에 선풍기가 걸쳐 있었고 선풍기 목을 변기 뚜껑이 헐렁하게 물고 있었다. 틈을 메우려는 듯 사이사이 밥그릇과 접시가 포개져 있었다. 그 위를 녹슨 아령이 짓눌렀다. 물건은 온전한 형태를 보여 주지 않은 채 조금씩 겹쳐 있었다. 아래에서 인형이라도 몇 개 빼면 우르르 쏟아질 것 같았다. 그제야 노파의 집은 오래전부터 수리도 이사도 계획에 없다는 걸 알았다.
인형 뒤로 부탄가스 통이 보였다.
“구멍도 안 뚫고 버렸어.”
“뚫어야 하는 거야?”
공영은 버리는 방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탁자가 들어갈 만한 종량제 봉투는 없을 거라고 했을 때도 목소리는 막힘이 없었다. 그 이유로라도 탁자를 남겨 두고 싶었지만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이던 공영은 단호했다. 상자에서 지난겨울 내게 무심히 건네준 손난로가 나왔을 땐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일회용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다시 넣어 두었다. 더는 따뜻해질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공영은 여전히 쓸 수 없는 건 버리자는 태도를 유지했다.
공영은 떨떠름한 얼굴로 상자 안을 뒤적였다. 영수증 뭉치를 들춰 보더니 내내 시근덕거렸다. 영수증만으로도 그간 우리의 이동 경로를 그려 볼 수 있었다. 뒤에는 오래전 유효 기간이 끝난 쿠폰도 여러 장 있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카페나 상점에서 받아 온 것들이었다. 공영과 나는 그중 많은 공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생생하다고 믿던 기억도 맞춰 보면 더러 빗나갔다. 지방 소도시인 줄 알았는데 자취방 근처였고 폭설이 몰아치던 날이 아니라 폭우였던 식이었다. 공영은 기억나지 않는 건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같은 이유로 남겨 두자는 쪽이었다. 건전지를 갈아 끼워도 초침이 움직이지 않던, 시계 수리점에서 고칠 바에야 새로 사는 게 낫다던 탁상시계도 그대로였다. 공영이 번번이 약속 시간에 늦던 내게 준 것이었다. 그때 내 방이 박물관이라면 보물 1호로 지정하자며 한참 키득거렸다. 공영은 그마저도 내놓으려고 해 겨우 막아섰다.
바람이 일자 구석에 쌓여 있던 신문지가 들썩이다가 휘날렸다. 공영은 성큼 물러났다.
“아무것도 버려 보지 않은 사람이야.”
먼일을 내다보고 내뱉는, 또 미래까지 섣불리 단정 짓는 목소리처럼 아득했다. 윤곽을 잡으면 주의나 경계에 가깝게 들릴 듯했다. 나를 빤히 보던 공영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틀었다. 부탄가스 통은 하나가 아니었다. 예닐곱 개쯤, 어쩌면 건조대 뒤쪽에 잔뜩 쌓여 있을지도 몰랐다. 눈을 치켜뜨니 시선 끝에 탁자 모서리가 잡혔다.
“아무래도 다시 들여놔야 하지 않을까?”
그사이 탁자는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았다. 어딘가 단단하게 묶여 있는 듯 균형이 잡혀 있었다. 한편 대문을 흔들면 뒤로 넘어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대형 폐기물 스티커는 공영이 붙여 놓은 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혹시 떨어질지 몰라 테이프로 여러 번 덧댄 흔적도 역력했다. 토스터에 가려진 쪽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눈여겨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깊게 파인 자국이 있을 것이었다. 공영이 자국을 가리려고 페인트를 칠해 줬지만 도리어 더 눈에 띄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탁자였다. 공영의 생각은 틀어졌다.
“망가진 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