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탁자 02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석순 Sep 19. 2023

탁자 (2)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둘이면 이 정도가 딱 맞지. 다들 이렇게들 시작해.” 

  수레를 열 개쯤 끄는 사람처럼 더디게 방 안을 돌아다녔다. 걸음마다 수레 위로 우산이나 접이식 의자 같은 게 아무렇지 않게 얹히는 듯 흔들렸다. 공영이 최선을 다했다는 건 모르지 않았다. 휴일마다 밀린 잠을 몰아 자는 대신 떼꾼한 얼굴로 도시 곳곳을 누볐을 것이었다. 점심시간마다 식당 대신 부동산에 드나들었던 나처럼.

  “그래야 늘여 가는 재미도 있지.”

  중개인은 정말 재미있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공영은 지금 사는 세입자들도 대개 십 년 이상씩 살고 있을 만큼 괜찮은 빌라라고 했다. 보증금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몇 주째 본 방 중에 가장 쌌다. 그만큼 치명적인 하자가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함정은 없어 보였다. 이제껏 우리는 함정을 잘 피해 왔다. 계약을 고민하기 전 층간 소음과 흡연의 흔적을 발견했고 완벽한 조건에 현혹되지 않고 등기부등본을 떼 본 다음 지나친 융자를 따져 물었다. 십수 년째 미뤄진, 늘여가는 재미와 괜찮은 빌라 사이에서 허리를 곧추세웠다. 

  결국 계약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함정이 도사린 걸 알면서도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저 얕은 함정이라 덜 다치기만을 바랐다. 계단 끄트머리에 뭉쳐 있는 먼지 뭉치와 컴컴한 데다가 누린내까지 퍼진 복도를 애써 모르는 척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더 좋은 방을 찾는 것보다 지금 보는 방이 낫길, 적어도 참을 만하길 기대했다. 공영은 우리가 마련한 돈과 보증금이 맞아떨어지는 방이 별로 없다고 했다. 사정을 감췄다고 생각했지만 중개인이 모를 리 없었다. 더 생각해 보겠다는 말에 대한 대답을 곱씹으면 짐작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들어서 알겠지만 더 쌀 순 없어. 그럼 월세나 반지하로 가야지.”

  아니면 범위를 넓혀 도심과 멀어져야 할 것이었다. 싼 만큼 출퇴근 시간은 늘어날 테고 삼십 분쯤 일찍 일어나 마을버스까지 타야 할지도 몰랐다. 월세를 아껴 고스란히 교통비로 써야 할 수도 있었다. 모자라면 신혼부부 대출도 잘 나온다는 말에 괜찮다며 돌아섰다. 중개인은 못 알아들은 줄 알았는지 미리 외워 둔 것처럼 자격 요건을 늘어놓았다. 두 번째까지 설명하다가 멈추고 내 쪽을 힐끔거렸다. 노파의 집에서 비디오테이프나 철 지난 교과서를 마주했을 때 지을 만한 표정이었다.

  “신혼부부가… 아닌가?” 

  대출 자격 요건을 숙제처럼 받아 들고 나섰다. 들을 것도 없이 첫 항목부터 어긋났다. 현관문을 연 채 돌아봤다. 바깥 공기가 서늘했다.

  “다른 방은 없는 거죠?”

  “이만한 방도 없어. 이 조건에 나올 게 아닌데 아까 봤다시피 워낙 외진 데다가….” 

  뒤에 이어질 말을 떠올렸다. 밤길을 조심해야지, 우유 하나를 사더라도 한참 걸어 나와야지, 운동 삼아 언덕을 오르내려야지. 나중엔 우리에게 어울린다고 할지도 몰랐다. 그 말을 듣기 싫어 딱 잘라 알겠다고 했다. 여전히 중개인은 활짝 웃고 있었다. 어쩌면 다들 재미없다는 걸 보고도 자기 혼자 웃는 쪽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과장이나 거짓말은 없어 보였다. 서류에 공영을 공명이라고 잘못 썼던 것만 빼면 계약은 매끄럽게 마무리되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건 이삿날 알았다. 보증금이 싼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돌이켜보면 둘이 살림을 합치면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부터가 허술한 속임수였던 것 같았다.



이전 01화 탁자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