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다른 방을 구해야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공영이 주말에 골라 둔 방을 보러왔을 때 앞집 세간은 죄다 대문 밖으로 내몰려 있었다. 섣불리 내부 수리를 계획했거나 이사를 서두르는 중인 듯했다. 얼마 전 폭우가 몰아쳤을 때 손쓸 틈 없이 집 안에 물이 들어찼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다지 수상쩍게 보이진 않았다.
구석에서 으그러진 헬멧이 햇빛을 튕겨 냈다. 중개인은 심상한 표정으로 고집만 남은 노인네가 혼자 살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나지막한 목소리를 얹었다. 아주 건강해서 기운이 뻗친다고.
“게다가 얼마나 바지런한지 몰라.”
턱짓하는 쪽을 보니 노파가 수레를 끌며 오고 있었다. 수레에는 귀퉁이마다 일그러진 상자와 반쯤 깨진 화분 같은 게 얼기설기 쌓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아슬아슬했지만 노파의 걸음은 망설임 없이 당찼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만 아니라면 정말이지 활기가 넘쳐 보였다. 짐을 치우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했다.
가까워질수록 노파의 들뜬 표정과 콧노래가 선명해졌다. 상자 사이에 꽂힌 멜로디언을 보자 동요라는 걸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익숙한 멜로디와는 달리 제목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멜로디언에는 건반 몇 개가 빠져 있었다. 그 자리가 빨려 들어갈 듯 한없이 깊어 보였다.
“아이가 있나 본데요?”
무심코 뱉고 보니 따지는 어투처럼 들릴 것 같았다. 대답은 헬멧을 집어 든 노파 쪽에서 튀어나왔다. 힘껏 찍어 누르는 말투였다.
“혼자 사는데! 왜?”
놀란 기색을 숨기려 급히 고개를 틀었다. 시선은 멜로디언을 지나쳐 크레파스에 꽂혔다. 짓밟은 것처럼 으깨져 있거나 분질러져 있었다. 쏘아보던 노파가 빙긋 웃었다. 특징을 잡아낼 수 없는 웃음이었다.
“언제든 애가 올지도 모르지. 앞날은 모르는 거니까.”
돌아선 노파를 따라 대문을 바라봤다. 대문 앞에도 잡동사니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요즘에도 전화번호부가 필요할까. 전화번호부는 퉁퉁 불어 터져 도저히 펼쳐지지 않을 것 같았다. 타이어는 뭐고 혼자 산다면서 텔레비전은 왜 두 대씩이나 나와 있는지 가늠해 봤다. 구석에 걸어 둔 시계에는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하긴 적어도 시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중요하지.
중개인은 바짝 붙어 섰다가 어깨를 두드렸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내 걸음을 옮겨 성큼 앞장섰다. 빌라 입구에는 여러 번 겹쳐 쓴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울퉁불퉁한 질감이 느껴져 화가 났다는 인상이 전해지는 글씨였다. 지워질 때마다 한 번씩 더 겹쳐 쓴 것 같았다. 창문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지 마시오. 경고는 방 안에 들어섰을 때도 머릿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