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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이란을 어떻게 다루었나?

[트럼프는 왜 달러를 죽이나?] 대중국 전략을 보는 힌트. 

by 김창익 Oct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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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5일 “한국은 머니 머신(money machine·현금 자동 지급기)을 갖고 있다”며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한국이 주한 미군 주둔 비용으로 연 100억달러(약 13조6500억원)를 지불할 것”이라고 했다고 조선일보가 10월17일 보도했다. 


한미가 최근 합의한 2026년도 방위비 분담금 1조5192억원(전년 대비 8.3% 인상)의 9배에 가까운 액수를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가 다음 달 대선에서 승리해 재집권하면 미국의 방위비 재협상 요구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블룸버그·시카고 이코노믹 클럽 주최 대담에 참석해 “우리가 한국을 북한 핵·미사일로부터 보호해 주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는다. 이건 미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정은에 대해선 “나는 그와 매우 잘 지냈다”며 친분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재임 당시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 50억달러를 요구했지만 한국이 난색을 보여 우선 20억달러를 내게 하고, 그다음 해에 50억달러로 올리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21년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내가 합의한 것을 다 뒤집었다”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한미는 바이든 정부 출범 직후인 2021년 3월 제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타결했다. 2020~2025년까지 6년 동안 유효한 다년도 협정으로, 트럼프 정부(2019년 9월)에서 시작된 협상을 1년 6개월 만에 마무리한 것이다. 이달 초에는 2030년까지 유효한 12차 SMA를 타결했는데, 대선 전에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게 낫다는 양국의 공감대가 컸다고 알려졌다.


트럼프는 10월4일에도 폭스 비즈니스 뉴스에 출연해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 부르면서 “한국을 한국전쟁에서 구하고 수십 년 동안 보호했지만 아무것도 받아내지 못했다”며 “동맹은 맞지만 무역에 있어서는 적(enemy)”이라고 했다. 지난 4월 타임 인터뷰에선 “왜 우리가 누군가를 지켜줘야 하나”라며 주한 미군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나타냈고, “한국이 우리를 제대로 대우하기를 원한다”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겠다는 의지도 강조했다.


이런 트럼프의 주장은 상당 부분 과장·왜곡됐다. 한국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 대한 국방비 가이드라인인 ‘국내총생산(GDP)의 2%’를 넘는 GDP 대비 2.5%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또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은 한미가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부담한다.


이날도 약 2만8500명 수준인 주한 미군 규모를 4만명으로 재차 거론했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215억달러(약 29조2900억원) 규모 투자를 약정하며 대미 최대 투자국으로 거듭났는데도 트럼프는 “나에게 투표하면 한국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일자리 엑소더스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했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트럼프의 경제·무역 참모들은 한미 간 무역 적자 폭에도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라이트하이저 측근인 제이미슨 그리어 변호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모든 국가와의 무역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1기 때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밀어붙여 이를 관철했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은 이날 출간된 저서 ‘전쟁(War)’에서 트럼프의 핵심 참모들이 한국·일본 같은 동맹국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물밑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드워드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이 조현동 주미 대사와 만나 “트럼프 2기가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할 것” “트럼프 역시 한미 관계가 양국의 상호 안보에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 사실을 공개했다. 


미국이 세계 경찰국가 역할을 하는 건 세계화 때문이다. 구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됐지만 러시아와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등 적성국가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달러 결제 시스템에 반감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다. 막대한 국방비를 들여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동맹국들을 지키는 건 세계화로 인한 이익을 지키는 데 들어가는 불가피한 비용이다. 


트럼프의 시각에서 세계화로 인한 이익은 금융자본의 것이지 미국의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세계화를 유지하기 위해 1조 달러에 달하는 국방비를 쓰는 것을 트럼프는 납득할 수 없다. 


트럼프 집권 1기 대중동 정책을 돌아보면 트럼프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국방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경찰국가 역할을 폴기하겠다는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국방비를 줄이면서도 현재의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유지하는 일석이조의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트럼프는 아주 치밀하고 지극히 점진적으로 이란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2019년 지난 9월15일 백악관에서 맺어진 아브라함 협정이 그 결실이다.


아브라합 협정은 이스라엘과 UAE, 바레인간에 맺어진 협정으로 수니파 이슬람 국가인 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정상 국가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로써 중동 이슬람 국가 중 이스라엘과 수교한 나라는 4개 나라로 늘었다. 앞서 이집트와 요르단이 평화협정을 맺었었다.


이들 4개국의 공통점은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수니파 위주의 국가로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는 적대 관계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요르단 평화협정(1994년) 이후 26년간 중동에서의 평화협정은 전무했으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워싱턴 정가의 통설이었다. 같은 수니파 국가인 카타르와 오만이 이들 4개국에 이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실제 아브라함 협정이 맺어지기 하루전 미국과 카타르는 워싱턴에서 전략 대화를 가졌다.  


세계지도를 보면 UAE와 바레인은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고 있다. 카타르와 오만도 마찬가지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란을 견제하는 것과 동시에 팔레스타인이란 화약고를 상당히 유용하게 만든다. 이스라엘에 땅을 뺏긴 팔레스타인은 수니파 이슬람 국가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미국과 석유달러 시스템을 놓고 혈맹관계를 맺고 있고 이번 협정으로 수니파 부국 대부분이 이스라엘과 동맹이 됐다. 적의 적은 내편이라고 했던가. 고립무원이 된 팔레스타인이 기댈 곳은 동병상련 관계인 이란 밖에 없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실제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손을 잡을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 입장에선 공격의 명분을 갖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는 아브라함 협정까지 이스라엘과 수니파 이스람 국가들을 상대로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 집권 직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노골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중동 정책 산물인 이란 핵협정을 무참히 깨버리면서 수니파 국가들의 환심을 샀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마주한 거의 모든 국가로부터 고립됐다.


아브라함 협정의 최종 목적지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간의 동맹이다. 수니파 맹주로서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갈등 관계지만 이란을 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패한 후에도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묶어 이란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지속했다.


2019년 11월22일(현지시간)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네옴시티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이 자리는 트럼프가 중재한 것으로 둘이 만난 테이블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마련한 자리란 점에서 중동에서의 새로운 역학관계를 만드는 데 양국이 머리를 맞댄 것은 분명하다.


만남의 장소 또한 주목할 만하다. 네옴 신도시는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탈석유화 계획의 핵심이다. 우리돈으로 600조원 가량을 들여 금융과 MICE가 결합된 친환경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두바이를 능가하는 중동의 금융과 MICE 허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와 관련, 201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한 사우디가 홍해 인근에 이같은 프로젝트를 실현하려면 이스라엘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트럼프가 추진했던 중동에서의 철군 계획이 납득이 가게 된다. 그는 단순히 주둔 비용을 문제로 미국이 70년대 이후 추진했던 항행의 자유와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석유달러 시스템을 약화시킨 게 아니라, 이스라엘-수니파 국가들간의 동맹이 미군을 대체하도록 한 것이다. 탁월한 사업가답게 비용은 최소화하고 이익은 극대화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은 이제 이라크 전쟁 당시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이 곳에서의 전쟁을 타전하는 뉴스에서 미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을 재추진 하는 게 이스라엘-이란전쟁의 기폭제가 됐다. 이 경우도 미국이 이란을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니다. 트펌프가 짜놓은 현재의 중동 역학관계가 이란 핵협정 재개 움직임을 지렛대로 전쟁 가능성을 수면위로 밀어 올린 것이다. 수니파 맹주들과 동맹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이 시아파 맞형 이란의 부상을 좌시할 리 없다. 실제 이스라엘은 바이든 당선이 확정된 직후 이란 핵협정 재가동시 전쟁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밝혀 왔다.  


현재 이스라엘-이란을 필두로한 시아파 중동 국가간 전쟁 상황을 보면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미군이 아직 전쟁 당사자가 아니란 점이다. 


중동의 선례를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역학관계에 대입해 보자. 트럼프는 우리가 더 많은 방위비를 지불할 것을 계속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균형이 바뀌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주한미군 주둔 목적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주일미군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1기 때의 행보를 되돌려 보면 그는 김정은과 푸틴과의 관계를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이란을 견제한 것과 같은 전략이다. 북한과 러시아를 밀착시켜 중국을 견제하는 이이제이 전략에서 한국은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빈 살만을 제편으로 만들기 위해 네타냐후가 네옴시티 건설에 협조해주도록 판을 짠 것처럼 김정은을 조종하기 위해 '핵보유국 인정'이란 카드를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중국을 고립시킨다는 트럼프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지만 우리와 일본에겐 위협적이다. 


한국과 일본은 극동아시아를 방어하는 두 개의 범퍼다. 하나의 범퍼를 강화한다면 두개의 범퍼는 필요하지 않다. 일본 자위대의 위상을 강화시키는데 미국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이같은 맥락이라고 보인다. 트럼프는 시나브로 주한미군이 없는 상황에서도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고 있다. 


우리가 분담금을 더 내고 덜 내고는 트럼프의 주된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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