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후, 남편은 마트 진열대에서 떨어지는 물건을 잡으려 순간적으로 든 왼손을 카트 손잡이에 세게 부딪혔다. 엄청 아파했으나 엄살이 있는 편이기에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숙소에 돌아와서 보니 심상찮다. 새끼손가락이 퉁퉁 부어 아예 접질 못하는 것이다. 가져온 맨소래담 로션을 바르고선 괜찮다는데 점점 시퍼레지는 손가락을 보며 갑자기 짠해졌다. 이렇게 아픈 줄 모르고 엄살로 치부했다니.
급히 로비로 내려가 가위를 빌려 한국에서 가져온 파스를 찢다시피해 잘라냈다.
나름의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은 밤이 깊어갈수록 뚱뚱해졌고 혹 부러진 게 아닐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다음 날 골프 예약을취소하자 했으나 남편은 펄쩍 뛰며 "네가 내 몫까지 두 번 치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한단다.
골프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기까지 우리를 이끈 원동력의 반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이 치앙마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저렴한 골프 때문이라는 걸 안다. 마음먹고 어렵게 온 만큼훼방 놓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지내던 차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지만 더 이상 어렵다는 걸 알고 있을 터였다.
결국 그는 다음 날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고 아픈 손가락을 제외한 9개의 손가락으로 라운딩에 임했다. 재밌는 건 그날 점수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남편은 손가락보다 그 사실을 더 언짢아했다.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손가락이 걱정되어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봤다. 구입한 진통소염제와 독일제 연고의 가격은 590밧, 2만 원이 훌쩍 넘는다. 감기 걸려 현지 병원에 갔다가 18만 원이 나왔다는 카더라통신의 신뢰도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마침 여행자보험에가입해두었으니 병원도 가보자 했지만,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며 두고 보겠단 고집 또한 꺾이질 않았다.
사정을 들은 니우는 약을 너무 비싸게 샀다며 안타까워했다. 태국 특산품인 타이거밤(호랑이연고)을 후다닥 꺼내왔고 아무렇게나 두른 파스도 마음에 걸렸는지 동생을 시켜 붕대와 반창고까지 사다 주었다.
만인의 걱정을 먹고 점차 호전될 줄 알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깔끔히 나을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결국 정밀검진을 해보니 골절이었다. 깨진 뼛조각이 멋대로 굴러다니다인대를 찌르고 있었다고 하니 듣기만 해도 미간이 찌푸려지는 부상이다. 그 손가락으로 필드를 나간 열정(?)이 대단도 하지만초기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미련했다.
한 달 살이의 훈장을 몸에 제대로 새기고선, 그 와중에 연습을 금지 당할까봐 항변하는 소리가 들린다.
"의사 선생님이 너무 안 쓰면 안 된대. 조금씩 재활을 해야 한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데 선수일 뿐 아니라 저 고집에 자꾸 져주게 되니, 나보다 나이 많은 아들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