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부엌에서 울컥한 이유

by 위키워키

"투머로우, 7 P.M."


한국 사발면으로 시작한 니우네와의 '주고받기'는 꾸준히 이어졌다. 우리가 무카타찜쭘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직접 만들어주겠다며 바로 날을 잡아버리니 이번에도 그다웠다.



잊지 못할 초대


라운딩을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조금 전 퇴근했을 팽이 장을 보러 간 눈치다.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엄청난 양의 고기와 채소, 해산물이 들려있었다.


도울 게 없냐 물으니 한사코 사양하다 오징어 손질을 부탁해왔다. 부엌은 누군가 돕는 것도 짐일 정도로 좁았기에 얼른 마무리하고 나가야겠다 생각하며 도마에 오징어를 올렸다.


그런데 내 눈이 오징어가 아닌 도마 한 켠에 박혀버렸다. A4 절반만한 나무도마가 성한 곳 하나 없이 삭아있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눈을 돌려 살펴보니 한마디로 살벌했다. 손님들이 신발 신은 채 들락날락해 먼지와 때가 엉킨 바닥, 층고가 높아 청소하기 어려울 벽과 천장엔 거미줄이, 가뜩이나 좁은 싱크대위엔 이 빠지고 찌그러진 그릇들이 자리하고 있고, 가스가 떨어져 못 쓴다던 화구는 가스가 있어도 작동하지 않을 게 뻔했다.

협소하고 낡은 부엌을 차지한 어마어마한 양의 재료들을 보고 있자니 제대로 대접하려는 이 부부의 진심에 고마움을 넘어선 황송함까지 느꼈고, 동시에 미안했다. 특히 나이가 같은 팽이 같은 하늘 아래서 하루를 보내지만 그 무게만큼은 같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손님이랍시고 은근슬쩍 짐을 얹은 게 아닐까 마음이 복잡했다.




팽이 양념한 돼지고기를 니우가 지핀 불에 구운 뒤, 매콤 달콤한 수끼소스에 찍어 먹으면 완벽한 한 입이었다. 찜쭘 국물 맛도 끓일수록 훌륭해졌는데, 잘 우러난 국물에 라면 사리를 넣어 먹는 건 태국에서도 국룰이었다.


식사 때마다 그나마 만만한 남편을 애처롭게 쳐다보던 시누안. 임신중이라 그런가 끝 없이 먹는다.

활달하고 친화력이 국대급인 니우와 달리 팽은 시크한 편이었다. 우리가 술을 많이 팔아주거나 이런저런 선물을 들고 가면 잠시 웃곤 했지만 그때뿐 밤낮으로 일하다 보니 늘 피곤에 절어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 팽이 저녁을 준비하느라 더 힘들었을까 우려한 것인데, 멀리 사시는 엄마와 통화하면서 "한국인 친구가 생겼다고 자랑했다"하니 그나마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지는 것 같았다. 많기로는 부창부수였다.


신기하게도 그런 팽과 남편의 생일이 같았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열광했고 팽이 유일하게 쉬는 일요일을 앞두고 전야제를 열기로 했다.



축제의 날

그렇게 잡힌 귀한 날 그녀가 고삐를 풀었다. 우리가 가져간 참이슬을 얼굴 하나 빨개지지 않고 물처럼 마셨으며, 조용히 사라지더니 짝퉁 소주인 태양 딸기맛을 추가로 사왔다. 태국 현지에서는 오리지널보다 과일소주가 인기라했다.

푼과 남폰이 밤 12시가 되자 케이크에 초를 꽂아 들고 왔다.


당연하다는 듯 생일을 함께 축하하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니우 대신 손님을 응대하고 계산을 해주기도 했고, 짧은 거리를 오갈 땐 팽의 오토바이를 타고다녔다. 니우 동생의 친구라든지 팽의 직장동료 등 어찌보면 만날 일조차 없었을 '먼' 사람들과 예고 없이 한 상에 앉는 것도 우리 부부의 일상이 되었다. 번역기에 의존하면서도 언젠가부터 서로의 이름을 불렀고, 장난도 쳤으며, 생각을 나누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한 마디가 이토록 와닿을 순간들이 또 있을까. 마음의 빗장을 잘 여는 남편뿐 아니라 경계심 강하고 내향적인 나까지 녹아들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이 친구들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환대 덕분이었다.




오징어를 다듬으며 울컥했던 부엌에 들어설 때면 어느 순간부터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고마웠다. 만리타국에서 이리 편하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남의 집 부엌이 있다니. 팽과 니우가 진심을 담아 친구들에게 베풀 요리를 하는 곳인데, 소박한 것은 모습이지 그 본질이 아닌 것이다.

그 어느 해보다 '글로벌한' 축복을 받은 남편과 팽의 생일날, 아쉽게도 어떻게 집에 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팽에게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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