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트래킹이라면서요(feat. 부들부들)

도이인타논 국립공원, 화이트카렌 소수민족 마을

by 위키워키

치앙마이 남쪽에 위치한 도이인타논 국립공원에 가고자 투어를 예약해두었다.


출발일 아침 7시, 전 날 새벽까지 니우네와 달린 터라 헤롱대며 12인승 미니밴에 올라탔다. 1시간 40분이 걸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국립공원 내 와치라탄 폭포.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한기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5도라고 적힌 안내판
"어제 온 팀은 아무것도 못 보고 갔어!"


가이드 로띠가 새파란 하늘을 가리키며 날씨 운이 정말 좋다고 했다. 2월은 태국 전역에서 논, 밭을 태우고 갈아엎는 화전 시즌이라 어딜 가나 매캐한 감이 있는데, 마침 간밤에 큰 비가 내려 자욱했던 미세먼지가 싹 씻겨나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못 보고 가는 게 아닐까 반신반의했기에 날씨요정의 등장에 쾌재를 부르는 중이었다. 다만 도이인타논이 '태국의 지붕'이라 불리는 최고봉이라더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가워진 날씨에 남편이 챙겨 온 패딩을 결국 뺏어 입어야 했다.


잠시 들른 몽족 시장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딸기를 맛봤다. 하얀 딸기는 맛도 희멀건하길래 빨간 딸기를 샀다. 기대 않고 구매한 160밧짜리 원두는 집에 와서 드립으로 마셔보니 완전 최고다.

더 사왔어야 하는 원두..

곧이어 들른 정상에는 왕과 왕비 장수기념탑 공원이 위치하고 있었다. 날씨가 청명한 덕에 산 아래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고 해가 중천에 가까워져 그런지 추위도 덜했다.




점심을 먹은 후 도착한 화이트카렌족 마을은 가이드 로띠의 고향이기도 했다. 투어를 마치는 대로 여기서 자고 갈 거라며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 귀여웠다.



고산지대에 터를 잡은 로띠네 민족은 나무기둥을 세워 필로티식 가옥을 짓고 아래에서는 닭들을 방목하여 기르고 위쪽 집에서 생활한다. 주된 수입원으로써 커피 농사를 짓거나 베틀로 천을 짜는데, 재밌는 점은 결혼한 여자들만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옷감을 걸칠 수 있다고 했다. 미혼인 여자는 흰색 등의 단색만 입을 수 있다고.


마을 투어가 끝나자 예약할 때 안내받은 '가벼운 트래킹'이 시작되었다. 쨍한 보랏빛 전통의상을 걸친 로컬 여성 가이드가 나타나 선두에 서더니 지팡이로 쓸 나무막대기를 하나씩 고르라고 했다. 들어보니 꽤 무거워 짐이 될 것도 같고, 설마 지팡이까지 쓸 일 있을까 싶어 나와 남편은 빈 손으로 출발했다.

계단식 논을 감상하며 완만하게 걷기 시작한 산길은 점차 본색을 드러냈다.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급경사는 어제 내린 비 때문에 질척거리기까지 했고 툭하면 손을 뻗쳐 아무 돌부리라도 짚어야 했다. 지팡이까지 나눠준 데는 다 이유가 있었거늘, 서늘하던 날씨도 미친 듯 쏟아지는 땀을 막지 못했다.


1시간쯤 지났을 무렵 그냥 하산할까 싶었는데 샌들을 신으신 중국인 아주머니가 넘어져가면서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걸 보곤 버티기로 했다. 다만 투어를 예약 참고했던 리뷰 생각이 자꾸 나서 부아가 치밀었다.


"70 어르신, 8살 아이도 거뜬했어요~"


뻥이 좀 섞일 수 있는 상품홍보란도 아니고, 대체 리뷰는 뭐였을까 머릿속을 떠날 줄 몰랐다. 어떤 어르신과 아이가 이 길을 쉬이 걸었을까. 구시렁대니 남편이 옆에서 도움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원래 애들이 산 잘 타~ 가벼워서."



애꿎은 리뷰 탓을 하는 사이에 태국 명물인 타이거밤을 만드는 원료와, 그 흔한 시나몬이 다 나무로부터 온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가이드가 떼어온 나무껍질들에서 신기하게도 각각의 향이 진하게 묻어난 것. 돌이켜보면 몸 사리지 않는 두 가이드 덕분에 귀한 구경을 많이 했는데 숙취 여파와 산행에 지쳐 고마움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나중에 보니 날씨, 가이드 재량에 따라 트래킹 코스가 달라지는 듯 했다.)

식용 꽃이라는데 별 맛 안 났다. 먹기에 아까운 비주얼.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고산족 가이드의 위엄


꼬박 2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출발지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 별안간 날벼락이 떨어졌다.



".. 뱀이다!"



남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만 보고 내달렸고 다른 한국인들도 함께였다. 알아듣지 못한 외국인들도 그냥 덩달아 함께 뛰었다. 팀원 모두가 도착지점에 순식간에 도착했고 뒤에 남은 현지가이드가 무심하게 나무막대기를 가져가 툭툭 걷어냈다. 정말 뱀이었다. 요란하게 도망친 우리가 웃겼던지 도착지점에 있던 주민들이 깔깔대며 즐거워하셨다.



막판의 짜릿한 스릴까지 겪고 나니 돌아오는 길 12인승 미니밴 안은 전멸이었다. 기사님은 모두의 숙소를 적어두셨다가 일일이 코앞까지 바래다주셨다. 모두가 뻗어버린 고요한 밴 안에서 투어에 대한 리뷰를 꼭 작성하겠다고 다짐했다.



"가볍게 털리는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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