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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Apr 09. 2021

퇴사의 변: 퇴사를 할 때 반드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2021년 3월 12일. 약 5년 남짓 몸을 맡긴 회사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팀장님과 부문 임원들께 퇴사를 고하고 인사팀에 제출할 사직서를 작성하고자 워드 문서를 열었습니다.

'사 직 서' 라는 세 글자를 적어놓고 엔터를 쳐내려가는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생각들이 빈 공백을 빼곡히 채워나갔습니다. 마지막에 이름 석자를 적어놓고 도장에 인주를 묻혀 꾸욱 누르는 순간. 그 시원하면서도 섭섭하고 아쉬운 미묘한 기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앞에 놓인 길을 그냥 가는 것과 잠깐 멈춰서 ‘어느 길로 갈까? 길 밖으로 가볼까?’ 고민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금은 막막하고 괴로울 수 있겠지만, 자발적 방황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꿈틀대는 상태를 의미한다. 잠깐의 멈춤이 오히려 멋진 여정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고민이 많아도 괜찮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니까.

- 정혜윤, '퇴사는 여행' 중 -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 선택이 정말 맞는 것일까?' 라는 고민을 수천번은 더 했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 어렵다는 취준시장의 경쟁을 뚫고 입사를 했던 것보다 퇴사하는 과정이 몇 배는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훗날 제가 내린 선택을 돌아봤을 때, 외줄타기같은 세상살이에서 앞으로도 천 번은 더 흔들릴 스스로의 중심을 바로잡기 위함이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움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퇴사를 하기 전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본인이 내린 선택에 대해 '좋고, 나쁨'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잔뜩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시원하게 코 한번 골은 다음, 마음을 추스리고 늘 그랬듯 출근 길에 오르는게 옳은 것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이라도 당장 회사라는 우산 밖으로 뛰쳐나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광장으로 뛰어드는 것이 중장기적으로는 옳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 퇴사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모든 상황에는 맥락이라는 것이 있고, 우리 모두가 오류 투성이인 사람인 이상 개인이 내리는 모든 의사결정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결정의 칼자루는 본인 손에 들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건 결정을 내리고 선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가' 입니다. 스스로를 설득하고 이를 납득할 수 없다면 퇴사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결정이 옳은 것일까?'라는 질문보다, '내가 직장생활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다시말해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시고 현재의 회사가 이에 부합하는지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퇴사의 변: 나는 왜 회사를 그만두었는가

이와 관련하여 저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원래 다니던 회사는 시장 점유율이 90%에 육박하는 독보적인 지위를 가진 안정적인 회사였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던 2015년 당시 앞으로 몸을 맡길 회사를 고르는 제 1의 기준은 '안정성'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바로 '생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의 제 가치관에 부합하는 가장 좋은 회사는 '안정적인 수요가 존재하는 시장 내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가치관인 '안정성'을 바탕으로 '생존'을 담보해줄 수 있는 기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인 시각에서 당시의 제 선택은 옳았습니다. 5년 동안 회사의 매출은 약소하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해왔고, 몇 십년 동안 점유율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빠른 속도로, 그리고 거대한 규모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는 이러한 변화의 기폭제로 작용했습니다. 시장의 변화에 예민한 소비재 제조업에 속한 대기업에서 리테일 부문과 연계되어 있는 직무로 근무를 했기에 작은 범주로는 시장이, 큰 범주로는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직접 목격하고 피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잘 아시겠지만 이러한 격변의 시대는 전방위적으로 모든 산업군에서 많은 기업들의 진입과 퇴출, 생성과 사장을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파도 속에서 개인의 삶이 촛불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는 단순히 코로나라는 단발적 이슈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외면하려 해도 시대가 변했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도 앞으로 시장과 시대는 더욱 빠른 속도로 그리고 보다 커다란 규모로 변화할 것입니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한 저의 가치관 '안정성'의 개념은 바뀌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뀐 가치관에 따라 '생존'의 전략 또한 바뀌어야 했습니다. 이 때 큰 도움을 준 것은 바로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나심탈레브는 그의 책에서 어떠한 충격으로 인해서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기준으로 모든 물질이나 상황을 '프래질(Fragile)', '강건함(Robust)', '안티프래질(Antifragile)'로 구분합니다. 가령 찻잔이나 도자기처럼 유리로 된 제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택배로 받아볼 때 박스에 뭐라고 적혀있었는지 기억나시나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Fragile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은 보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프래질'하다는 것은 충격에 쉽게 무너지고 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프래질의 반대 개념을 '강건함'으로 오인하기 쉬운데, 강건함은 충격에 대해 중립적인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충격이 발생해도 이를 잘 견뎌내는 단단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의미론적으로 보았을 때, 프래질의 반대 개념은 충격이 가해질수록 되려 더욱 강해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개념을 나심탈레브는 안티프래질이라고 명명합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변화라는 충격에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안티프래질'의 개념이 이 시대의 새로운 '안정성'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로써 2015년에 제가 명명한 '안정성'이라는 가치관은 '안티프래질'로서 구체적으로 재개념화 되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지금의 회사를 떠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유컨대 기존에는 보지 못했던 엄청나게 커다란 파도가 무서울만큼 빠른 속도로 눈앞에 밀어 닥치고 있을 때에는, 타이타닉처럼 무겁고 커다란 배에 정착해있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작은 서핑보드를 하나 챙겨서 다가오는 파도에 올라타서 이를 즐기는 것이 되려 안정적일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에 다다라서 개인적인 가치관의 변화를 확인하고 나서야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큰 배를 버리고 서핑보드 위에 올라타기로 했습니다.


커다란 배에서 내려오기로 결심한 이후, 저는 서핑보드를 찾아 나섰습니다. 제 기준에 안티프래질한 업종에서 변화라는 파도에 올라타 재밌게 서핑할 수 있는 회사는 IT에 기반을 둔 유연한 조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기준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는 회사들의 경력직 채용 공고를 살펴보며 약 3개월 정도 이직을 준비했고 결국 2021년 4월부로 그 중 한 곳에 경력직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직을 통해 바라는 것은 돈도 중요하지만 제 시간을 의미 있는 일에 쓰면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 과정에서 조직을 넘어선 개인의 궁극적인 안정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안티프래질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결정이 맞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2015년의 가치관이 변했음을 2021년에 깨달았듯이 현재의 가치관도 분명 바뀔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가 생각했던 이상향과 새롭게 출근하게 된 회사의 방향성이 서로 다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시니컬하게 조언했듯 "회사는 다 똑같애"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인생이라는 항해를 해 나가면서 건강한 방황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라고 하는데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방황하며 스스로 가치있는 삶을 찾아 나서는 존재를 가리킨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 -


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가치관을 되묻고, 돛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풍향과 풍속 그리고 파도를 민감하게 계산해 뱃머리를 바꿔나갈 것입니다. 회사는 다 똑같을지 모르지만 개개인은 다 다릅니다. 똑같은 회사 안에서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자신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저 그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삶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이제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또 다른 방황을 시작합니다.


“자유 의지로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중


이것이 저의 짧은 퇴사의 변입니다. 같은 시대에서 각자의 어려운 고민을 끌어안고 사는 한 '호모 비아토르'의 이야기가 또 다른 '호모 비아토르'에게 작은 힘이 되고 조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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