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영어 참견 2

Recipe for English Teaching

by 영어 참견러

4년을 연애하고 27년을 살아오면서도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언젠가, 진심으로 내 입에서 "사랑해"라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랑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나도 아들처럼 사랑에 서툴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연애 참견>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도 연애하는 것이 마냥 설레고 즐거운 경험만은 아닌듯하다.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 심리적인 소모전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결혼이라는 목표를 바라보고 현실적인 문제들과 만나게 되면 그 관계는 심각해지기도 한다. 연애와 사랑에 대해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까?


만약 내가 청춘이었을 때, <사랑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과 같은 책을 읽었다면 조금은 덜 아팠으려나. 사실, 나 때는 (라테~는) 개인 휴대폰도 없어서 집 전화를 이용해야 했다. 그 유명한 삐삐~ 폰도 사용해 보지 못했다. 그 당시 겪은 가슴 설레는 경험도, 헤어지는 아픔도, 심적 갈등도 오랜만에 뒤적거리는 낡은 앨범 속의 사진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결혼해서 아들과 딸을 낳고 살면서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 넓고 깊은 사랑을 날마다 절절히 배우고 있지만 말이다. 사랑의 관계가 대부분 어렵고 힘들듯이 영어와의 관계도 만만치 않다.


14년 전에 남편의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짐 정리만이 아닌 학원을 정리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마침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한 부부가 찾아와 학원의 모든 것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 수업 방식을 배우고 싶어해서, 수업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하는 도중에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알려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때부터인가 기회가 된다면 나만의 지도 방법(teaching know-how)을 누군가에게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부부는 영어 티칭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인지 1년 만에 학원 문을 닫게 되었다. 바로 옆에 있던 보습학원 원장이 그 학원을 인수하였다가,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돌려주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이 학원은 선생님것이에요!" 그 이후로 <정's English Time>이라는 이름으로 10년을 더 운영하게 되었다. 인생 전반전을 마무리하면서 돌아보니, 20년 동안 내가 한 일은 다름 아닌 영어 중매쟁이였던 것이다.


‘메타버스 시대, 영어와의 연애를 계속해야 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된 첫 번째 고민보다 앞선 질문은 ‘AI 시대, 영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였다. 왜냐하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보다 앞선 문제가 '어떻게 배워야 할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교사가 어찌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이 나를 이렇게 <영어 참견>하는 자리에 서게 하였다. 3년 전 기적의 아침, 꿈에서 얻은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 10가지' 재료가 준비되어 있으니 두 번째 요리로 <영어 중매 십계명>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영어 연애 십계명>이 영어와 사이좋게 지내길 원하는 분을 위한 레시피라면, <영어 중매 십계명>은 누군가에게 영어를 소개하고자(가르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레시피이다.


아쉽게도 이번 영어 참견에는 테스 형이 함께 할 수 없다. 그의 나이 칠십을 앞두고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마지막 아래의 말을 마친 채 독주를 마시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끝을 맺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가야 합니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앞길은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오직 신만이 알 것입니다."


그의 젊은 제자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기록한 이 장면을 보면서 빌라도의 재판이 떠 올랐다. 69세 철학자의 위풍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재판에서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던 33세의 젊은 청년 예수(Jesus)말이다. 그를 찾아 아테네에서 자리를 옮겨 이스라엘로 가보니, 이제 막 동튼 새벽, 갈릴리 바닷가에서 숯불에 생선을 굽고 있다. 빌라도 재판 후, 십자가 형을 당한 예수가 부활 후에 제자들을 찾아간 것이다. 선생이자 메시아로 믿고 따랐던 예수의 죽음 후,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 중 일부는 다시 어부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고 있다. 밤새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배고픈 제자들을 위해, 직접 숯불에 구운 생선을 빵과 함께 손으로 뜯어 나눠주는 모습이다. 먼 타국에서 온 이방인을 위해 마당에서 땀 흘리며 햄버거 패티를 굽고 계시던 젊은 목사님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왜(WHY) 보다는 어떻게(HOW)에 관심이 많았던 소크라테스. 그에겐 왜(WHY)는 의미가 없었다. 그에겐 '우주가 왜 이렇게 생기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다만,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지, 어떻게 나 자신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는 아테네 인들은 모든 것을 개선하려 노력하지만, 그 모든 것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다는 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고,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라고 외쳤던 것이다.


정 영숙 프리랜서


영어 내비게이터 (학습/티칭) & 튜터링: 영어를 통해 삶의 가치와 기쁨을 누리는 튜터로서 인생 여정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를 안전하고 평안한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길 원합니다.


구독자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