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뇌 빅데이터
Epilogue 영어 참견
소크라테스(BC 470-399)가 동행한 덕분에 <영어 연애 십계명> 요리를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자신을 알고자 하는 마음’은 기원전 430년 경에 그리스 아테네의 거리를 다니며 청년들과 대화를 나눈 소크라테스만은 아니었다. 그의 시대부터 2450년이 지난 요즘은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나의 뇌를 안다’는 말과 같이 여겨지는 세상이다. 인간의 마음도 뇌에서 일어나는 기능이라고 하니, 우리의 뇌를 아는 것이 나를 진정으로 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IQ나 다중지능검사, 지문검사, 심리검사, ADHD 검사, 치매 검사 등 다양한 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을 운명으로 여기거나, 자신의 재능을 타고난 능력으로 제한하는 고정된 마인드셋을 버려야 한다. 어떤 한 가지 직업에서 한 가지 능력만이 필요하거나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잠재적인 능력은 지금 오늘,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 따라 변화되고 계발되기에, 노력하는 성장 마인드 셋을 장착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빅 데이터라는 도토리가 머리에 떨어진 날,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빅 데이터는 이미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SNS나 책을 통한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input) 후 처리 과정(메모리, 저장)을 통해 정형화되고 논리적인 형태로 결과를 출력(output)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뇌가 이해하고 사고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본 따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 컴퓨터의 CPU(Central Processing Unit 중앙처리장치)가 처리할 수 없는 재능이 인간에겐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직관력이다. 이 직관은 문제를 푸는 시간을 순간적으로 뛰어넘고 바로 답을 말하는 것이다. 백신정 저자의 <내 안의 빅데이터를 깨워라>에 의하면 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통칭해 ‘뇌 빅데이터’라고 말하는데, 이것을 잘 표현하는 단어가 직관력이다.
뇌 빅데이터에서는 ‘유레카’와 같은 순간적인 산출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러한 능력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 학습은 신경세포의 연결고리인 시냅스에서 일어난다고 하니, 이러한 시냅스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Feeling, Watching, Thinking, 그리고 Doing이라는 뇌의 학습 과정을 지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Dreaming도 함께 말이다. ‘메타버스 시대, 영어와의 연애를 계속해야 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된 <영어 참견> 덕분에 요리도 연애도 영어도, 결국은 사랑이고, 하나의 끈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메타버스가 아닌, 어떤 다른 시대가 오더라도 이러한 사랑은 지속되어야 함도 말이다.
또 하나의 소득이라면 영어의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어는 말이고, 절대 마스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난 자유를 얻었다. 영어와의 교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영어를 정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나를 사로잡았었다. 몸이 피곤할 때에도 영어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자면서도 들었다. 단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강박감이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자로서 영어 공인인증 점수에서 만점이나 그에 준하는 높은 점수를 받아야 체면이 선다는 완벽주의적인 마음이 잡초처럼 무성하게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어가 국제어이자 인터넷 언어로서의 역할과 높은 지위는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영어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제 완벽한 자유를 선포한다.
이제야 '나 자신을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자신을 알라!" 고 외쳤지만, 진정 나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내 마음이 그러한 양가적인 마음이었음을 말이다. 영어를 사랑했지만, 그 덫에 걸려 자유하지 못한 영혼, 그래서 육체의 피로와 나이 그리고 AI를 핑계 삼아 도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삶의 한가운데>는 2차 세계 대전 시기에 한 여인을 사랑한 슈타인이 18년 간 쓴 일기글이다. 이 글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삶의 그물에 메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바로 내 모습이 그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인생의 가치와 행복이 사랑하는 자의 한마디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변화하는 것을 읽으면서 인생이 재미있음을 느낀다.
만약 내가 테스 형과의 대화를 통해, '영어, 넌 누구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글을 쓸 엄두를 못 내고 있었을 것이다. 책을 쓰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에, '완벽한 영어실력을 갖추어야 책을 쓸 수 있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쓴 영어책을 누가 읽겠어?' 라며 스스로에게 정신 차리라며 찬물을 뿌렸을 테니까 말이다. 슈타인이 자신의 마지막 죽음의 일기에 '니나에 대한 사랑으로 인생을 잘 살았다'라고 쓴 것처럼, 나도 '영어에 대한 사랑으로 인생을 잘 살았다'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 위함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테스 형 덕분에 이렇게 생애 첫 영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이제 시간과 공간의 제한으로 인해 첫 번째 영어 참견의 막을 내리고자 한다. 아직도 해야 할 <영어 참견>이 남아있다. 두 번째 영어 참견은 아마도 <영어 중매 십계명>이라는 영어 퓨전 요리가 될 것이다. 어떤 맛이 날지 사뭇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