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랑하자 후회 없이 Love Others
옴 Scabies
엄마는 6인실 중환자실에 계신다. 두 명의 간병인이 6명을 돌보고 잇는 상황이다. 방문할 때마다 작은 소리로 기도를 해드리고 있다. 그런데, 한 달 전 즈음,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떠 오른 생각은 그 방에 있는 다른 분들 침상에 가서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라는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마음이었기에 마치 하나님의 음성처럼 느껴졌다. '엄마만의 천국행을 위한 기도가 다른 분들에게 미안했나?'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일주일에 한 번만 허락되던 면회가 매일로 바뀌긴 했지만 하루 2번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고 시간도 20분으로 정해져 있다. 비닐 옷과 장갑을 입고서야 병실에 들어갈 수 있고, 그 시간에 엄마와 대화를 나눌라 안마를 해드릴라 필요한 부분이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빠뜻하다. 게다가 커튼이 다 쳐져 잇는 상황에서 다른 분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 후 방문을 했더니 엄마 침대 바로 옆 할머니 병상이 비어있는 것이었다. 아뿔싸 한 발 늦었구나!라는 생각에 간병인에게 물어보니 다른 층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환자의 마지막 옷을 이곳에서 입혀 드려요"라고 말한 것으로 상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요양병원 중환자실, 바로 호스피스 병동으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들이 머무는 곳임을 입원한 지 3개월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용기를 내어 간병인에게 그 방에 있는 분들을 위해 기도를 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가족들이 자주 방문한다면서, 거절을 한다. 결국, 기도를 하지 못하고 집에 오자마자 간호사실에서 전화가 한 통 왔다. "311호 병실에서 옴 환자가 나와 환자의 온몸에 연고를 도포했고 연고 가격이 1만 원입니다." 별일이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면회는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옴? 옴이라니!
'재수 옴 붙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가려움과 전염성이 있는 악성 진드기다. 늘 예상치 않는 일이 벌어지긴 하지만 옴이라는 말에 당황스러웠고,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후 손과 팔 여기저기 발진이 생기기 시작하여, 의사에게 보여주니, "글쎄요... 옴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요."라고 별일 아니라는듯한 말로 얼버무린다. 사실 그 증상은 '만성 습진'으로 고생하는 교회에서 만난 한 여자분의 손을 잡은 후 생겼다. 혹시나 하여 알아보니 습진은 전염성이 없다고한다. 얼마 후 그분을 만났는데, 신기하게 나의 그 증상 이후 자신의 습진이 좋아져 더 이상 간지럽지가 않고 임상 실험으로 치료 중인 의사도 신기해한다는 것이다. 그분을 위해 기도하면서 소금을 드린 적이 있는데 그소금 덕인지 기도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옴 사건 이후 엄마만이 아닌 병실에 있는 다른 분들도 긍휼히 여기게 되었다. 아픈 이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나의 시선이 다른 이에게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엄마의 병상 생활로 인해 생긴 내 마음의 상처도 아물어져 가고, 몸의 가려움증도 어느새 사라졌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and be freed from your suffering.” (마가복음 5장 34절)
엄마가 사래에 걸려 콧 줄을 끼기 시작하면서 요양병원으로 옮기라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다. 2월 말, 급성 폐렴으로 요양원을 나온 후 한 달간 대학병원 세 군데를 다녔다. 의료 파업으로 인한 의사들의 공백은 진료와 치료의 공백과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졌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의 오른쪽 쇄골 뼈가 부러졌고, 엉덩이 근처에는 욕창이 생겼다. 하반신 아래엔 멍으로 가득 찼고, 여러 항생제를 맞은 결과로 항생제 저항균이 생긴 상태다. 그 와중에 혈변이 나왔다고 대장암 검사까지 했다. 하지만, 그 후 소변줄과 기저귀를 찬 채로 지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요양병원을 찾기 위해 몇 군데를 다니면서 난 충격에 빠졌다. 그곳은 한 마디로 죽음의 수용소이고, '시체 놀이'를 하는 곳이다. 대부분 콧줄을 끼고 소변줄과 기저귀를 차고 누워 있는데, 시선이 허공에 머물거나 눈을 감고 있다. 낮에도 밤에도... 어느 가족이 말했듯이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과 같은 모습의 노인들이 수 백 명씩 병원에 가득 차 있다. 숨이 멎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죽을 수도 없는 모습이다. 콧줄과 산소공급기, 소변줄과 혈관주사용 정맥주사 줄, 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동맥혈관 주사줄 등을 대롱대롱 메고 누워있는 환자들은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사람들보다 더 기괴한 모습이다. 각 병원마다 병실마다 200명 이상의 노인 환자들로 가득 차있다.
인생살이가 너무 힘드면 죽지 못해 산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 모양새는 죽어야만 하는데 죽을 수 없는 상황이다. 누가 이러한 운명을 만든 것인가? 인간의 존엄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곳. 과연 이들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한 모습을 보아야만 하는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얼마나 자주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방문할까. 요즘은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무리 연명치료를 거부하었다고는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왜냐하면 콧줄을 통해 음식을 넣고 영양제를 투여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한 환자의 목숨은 연장될 수밖에 없다. 치료의 목적은 아니지만, 목숨 연명은 가능하게 하는 것이 법적인 의사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명분이다.
엄마의 요양병원 간병인 비용은 하루에 4만 원이니 한 달이면 120만 원 정도다. 콧줄을 통해 음식을 투여하고 가래를 제거하고 환자들의 소변과 대변을 치우면서 기록하는 것이 간병인들의 주 업무다. 요양병원은 국민 건강보험이 적용되기에 치료나 입원 비용은 거의 비슷하다. 환자가 내는 비용이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라면 공단에서 지원받는 비용은 400만 원. 한 병원에 200 병상이라면 공단에서 받는 비용은 한 달에 대략 4억이다. 환자를 돌보는 것은 간병인이 주로 하고, 그들의 비용도 개인이 부담하는 시스템이다. 그런 상황이니 의사는 처방만 내리고 간호사나 조무사가 혈압이나 맥박 체온만 확인하면 되니 상가마다 요양병원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예전 요양원은 모든 방이 1인실로 되어있고, 한 간병인이 2.5명 즉, 두 명이 5명의 환자를 돌보는 곳이었다. 요양 3등급을 받았음에도 한 달에 3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었는데, 그래도 식사를 같이 하면서 교육이나 문화 프로그램을 하는 곳이었기에 엄마가 만족해 한 곳이었다. 이전에는 요양병원에서 간병비만 300만 원이 넘었고, 낙상으로 허리를 두세 번 다치고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어 이렇게 떠도는 신세가 된 것이 만 4년 째다.
처음에는 그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죽은 시체보다도 더 끔찍한 모습이기에...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들에게 시선이 돌려지면서 긍휼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의사, 간호사 등과 같은 의료인의 고충도 이해하고, 간병인에 대해 감사한 마음도 크다. 그들이 없다면 내가 아픈 엄마를 놔두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이러한 상황은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렇기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사에 대한 관심과 현실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고령화와 저출산의 시대를 맞이한 세대들이 지혜를 모아 서둘러 해결하지 않으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들의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비싼 의료 비용과 호스피스 케어 비용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