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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Apr 23. 2024

네가 치즈 맛을 알아

세상에 태어난지 270일

백일이 지나면 얼래고 달래는 어른들 재롱에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예쁠 때인데 별 반응이 없다. 어른 재롱이 수준미달인지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어른이 되어서 태어났는지. 아이 키우는 엄마도 재미없을 정도로 웃지도 않고 무덤덤하다.


낯가림을 할 만한 월령임에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그냥 다가가고 날마다 보아온 부모에게도 좋은지 나쁜지 감정 변화가 별로 없다. 얼굴이나 손, 발, 엉덩이를 씻기며 물을 뒤집어씌워도 울지도 않는다.


그런 아이가 먹을 것 앞에서의 반응은 확실하다. 뭘 알기나 할까 싶은데 좋아하는 것은 손뼉 치며 환영하는 것을 보면 감정이 영 없는 아이는 아니다. 실속 없이 실실 웃어주는 아이가 아니라 실속파인가. 배고플 땐 분유 한 통을 두 손 벌려 받아 들고 꿀떡꿀떡 맛있게도 먹는다. 10ml, 20ml 더 먹이려 애태우던 부모를 이제는 마음 편하게 한. 후기 이유식 밋밋한 맛을 거부하던 손짓과 다르게 격하게 환영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냉장고 문 앞에 서기만 해도 집중하여 바라보는 두 눈. 치즈 한 조각을 들고 나오는 순간 무덤덤한 아기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끄~응 앙 앙’ 급하게 조르는 모습을 보면 네가 치즈 맛을 알아? 딴소리 말고 빨리 달라고 아~앙 앙앙 거린다. 먹기 싫어 손으로 밀쳐내던 이유식도 치즈와 함께 주면 입을 딱딱 벌리며 다 받아먹는다. 이유식보다는 치즈가 맛있나 보다.


 맛을 알기나 할까그깟 치즈가 뭐라고 가짜 손놀림에도 속아  크게 벌리고 이유식을 받아먹는다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쁘다 할머니 속임수에 넘어간 거야찌그러진 할미꽃도 활짝 피게 만드는  주인공이 바로 너다 번만 속이면 이젠  안다는  치즈  손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손녀의 반응을 기다리며 눈싸움을 해보지만  맑은 눈망울을 보면 ‘졌다 졌어.’  때까지 온몸으로 말하는 네가 치즈 맛을 알아.


어린이 치즈가 정말 그렇게 맛이 있을까. 벼룩이 눈물만큼 떼서 맛을 보지만 밍밍한 것이 아무 맛도 없다. 세상에서 이맛 저 맛으로 길들여진 찌든 입맛으로 아이의 순수한 입맛을 평가하지 말자. 그래, 그래 많이 먹고 얼른 자라라. 그런데 네가 치즈맛을 알기나 해. 감정표현이 거의 없는 아이가 격하게 반기는 그 맛이 더 궁금해진다. 순수한 입맛이 좋아하는 치즈 덕분에 이유식 먹이기가 훨씬 수월하다. 이유식에 치즈 듬뿍 얹어 줄 테니 많이 많이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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