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난지 270일
백일이 지나면 얼래고 달래는 어른들 재롱에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예쁠 때인데 별 반응이 없다. 어른 재롱이 수준미달인지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어른이 되어서 태어났는지. 아이 키우는 엄마도 재미없을 정도로 웃지도 않고 무덤덤하다.
낯가림을 할 만한 월령임에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그냥 다가가고 날마다 보아온 부모에게도 좋은지 나쁜지 감정 변화가 별로 없다. 얼굴이나 손, 발, 엉덩이를 씻기며 물을 뒤집어씌워도 울지도 않는다.
그런 아이가 먹을 것 앞에서의 반응은 확실하다. 뭘 알기나 할까 싶은데 좋아하는 것은 손뼉 치며 환영하는 것을 보면 감정이 영 없는 아이는 아니다. 실속 없이 실실 웃어주는 아이가 아니라 실속파인가. 배고플 땐 분유 한 통을 두 손 벌려 받아 들고 꿀떡꿀떡 맛있게도 먹는다. 10ml, 20ml 더 먹이려 애태우던 부모를 이제는 마음 편하게 한다. 후기 이유식 밋밋한 맛을 거부하던 손짓과 다르게 격하게 환영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냉장고 문 앞에 서기만 해도 집중하여 바라보는 두 눈. 치즈 한 조각을 들고 나오는 순간 무덤덤한 아기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끄~응 앙 앙’ 급하게 조르는 모습을 보면 네가 치즈 맛을 알아? 딴소리 말고 빨리 달라고 아~앙 앙앙 거린다. 먹기 싫어 손으로 밀쳐내던 이유식도 치즈와 함께 주면 입을 딱딱 벌리며 다 받아먹는다. 이유식보다는 치즈가 맛있나 보다.
그 맛을 알기나 할까. 그깟 치즈가 뭐라고 가짜 손놀림에도 속아 입 크게 벌리고 이유식을 받아먹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쁘다. 넌 할머니 속임수에 넘어간 거야. 찌그러진 할미꽃도 활짝 피게 만드는 그 주인공이 바로 너다. 두 번만 속이면 이젠 다 안다는 듯 치즈 든 손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손녀의 반응을 기다리며 눈싸움을 해보지만 그 맑은 눈망울을 보면 ‘졌다 졌어.’ 줄 때까지 온몸으로 말하는 네가 치즈 맛을 알아.
어린이 치즈가 정말 그렇게 맛이 있을까. 벼룩이 눈물만큼 떼서 맛을 보지만 밍밍한 것이 아무 맛도 없다. 세상에서 이맛 저 맛으로 길들여진 찌든 입맛으로 아이의 순수한 입맛을 평가하지 말자. 그래, 그래 많이 먹고 얼른 자라라. 그런데 네가 치즈맛을 알기나 해. 감정표현이 거의 없는 아이가 격하게 반기는 그 맛이 더 궁금해진다. 순수한 입맛이 좋아하는 치즈 덕분에 이유식 먹이기가 훨씬 수월하다. 이유식에 치즈 듬뿍 얹어 줄 테니 많이 많이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