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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Apr 30. 2024

무질서한 난화기

생애 첫 그림(15개월)

육아 휴직이 한 3년씩 주어졌으면 할머니가 걱정할 일이 없었을 텐데. 아이 돌이 지나고 엄마는 출근하고 할머니가 유아보육을 맡아 새삼스럽게 고민이다. 정서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일단은 먹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 아이에게 뭘 해먹여야 키도 쑥쑥 자라고 뼈 튼튼 몸도 토실토실 건강하게 잘 자랄까.


어린아이 삼시세끼 챙겨 먹이며 돌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계획된 식단이나 기준이 없으면 때마다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뭔가 기본 틀이 있어야 될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는 5대영양소를 생각하며 뭘 해먹일까 어린이집 식단을 검색해 보고 나름의 식단을 짰다.

 

아직은 여러 가지 맛에 길들지 않았기에 자연 그대로의 맛으로 잘 먹는다. 계란찜 하나를 해도 브로콜리, 시금치, 당근, 양파를 잘게 다져 넣으면 소금이나 설탕이 들어가지 않아도 맛이 난다. 감자 당근 두부, 고기, 생선도 번갈아 챙겨 먹인다. 할머니가 잘 먹는 사람 좋아하는 걸 눈치챈 아이처럼 잘 받아먹으니 얼마나 예쁜지 참 다행이다.


그 덕분인지 생전처음 잡은 연필을 힘 있게 잘 움직인다. 팔의 힘인지 어깨의 힘인지 연필 잡은 손의 악력이 만만찮다. 백지를 가져다주며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무질서한 난화기 연령에 맞게 잘도 그린다. 할머니는 손녀의 첫 작품에서 예사롭지 않은 힘을 느낀다. 제멋대로 그려진 선이지만 가로 세로 직선으로도 보이고 둥글게도 보인다. 선이 제법 힘이 있다.


처음 잡은 연필이지만 어색하지 않고 단번에 휘갈기던 그 힘은 역시 밥 힘이다. 밥 먹은 값 하는구나.

손이 가는 대로 힘이 닿는 대로 순간 낙서를 한 것인지 새로운 도구의 신기함을 발견한 것인지 유아의 속 깊은 뜻은 알 수가 없다.


작가의 작품을 보고 느끼는 건 독자의 몫이다. 각자의 느낌이 답이니 설명이 필요 없다.  15개월 아이의 인생 첫 그림 다시없을 좋은 예술작품으로 할머니는 인정한다. 참 잘했어요.


별일이다. 누가 뭐라든 할머니는 손녀에게 콩깍지가 씌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싱싱한 콩깍지를 유지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자아가 점점 자란 손녀에게 도리깨질을 당하면 콩깍지는 산산이 부서져 보호막 없는 콩알로 오들오들 떨겠지. 그때가 오더라도 귀엽고 예쁜 이때의 행복을 놓치지 말아야지.  


                   생동감이 넘치는 생애 첫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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