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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Nov 15. 2021

뉴욕 냄새 맡으며 치킨버거

크루즈 승무원의 일상 <기항지 편 ep. 8>


카리브해 크루즈를 끝낸 퀸 엘리자베스는 본격적인 북유럽 크루즈를 시작하기 전에 미국과 캐나다를 경유했다.



미국과 캐나다를 거쳐 북유럽과 영국으로 가는 당시 노선,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는 퀸 메리



그중 첫 항구는 미국의 플로리다주에 있는 포트 로더데일 (Fort Lauderdale, Florida) 이었다. 너무 바쁜 날이라 우리 팀에서는 그 누구도 외출할 수 없었지만, 그 안타까움은 다음 항구에서 해소시킬 수 있었다.


NEW YORK


뉴욕은 개인적으로 몇 번 가봤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또 가고 싶은 도시 중 하나이다. 이런 마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기에, 팀 모두가 짧게라도 외출할 수 있도록 서로의 쉬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까지 사이좋게 분배한 날이었다. 짧은 시간이기에 나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누가 봐도 뉴욕인 줄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인 타임스퀘어에서 사진 찍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 프랜차이즈 브랜드 중 하나인 칙필레에서 치킨버거 먹기


뉴욕에는 맨해튼 크루즈 터미널 (Manhattan Cruise Terminal) 과 브루클린 크루즈 터미널 (Brooklyn Cruise Terminal), 두 개의 크루즈 터미널이 있다. 그중 퀸 엘리자베스가 정박한 항구는 맨해튼 크루즈 터미널 중에서도 선착장 90 (Pier 90)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맨해튼 중심가와 가까운 것이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좋았으니 운이 좋았다. 나는 피어 90에서 나와 타임스퀘어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택시를 타면 더 빨리 갈 수 있었겠지만, 어차피 무언가를 더 할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기에 뉴욕의 골목길을 걷고 싶었다.



맨해튼 중심가와 근접한 맨해튼 크루즈 터미널 (출처: NYCruise)
두 터미널 위치 (출처: CruiseMapper), 그리고 우리 배가 정박했던 선착장 90



역시 뉴욕이다. 골목을 지나면서 여러 건물에서 피자가게를 볼 수 있었다. 조금은 허름해 보일 수도 있는 동네 구멍가게가 아닌, 바로 동네 구멍 피자가게다.


이런 류의 피자가게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에서 1차 하고 2차 하고 3차에서 감자탕이랑 소주 한잔 하듯이, 일본에서 1차 하고 2차 하고 3차에서 라멘이랑 병맥주 한잔 하듯이, 미국에서 1차 하고 2차 하면서 음식도 술도 충분히 흡입했는데도 불구하고, 3차에서 너무나도 먹고 싶어 지는.. 그래서 안될 것을 알면서도 결국에는 손을 데고 마는.. 바로 그런 마성의 피자를 파는 가게다.


그 얼굴보다도 큰 한 조각의 피자가, 그중에서도 따라 할 수 없는 대륙의 맛을 품은 그 페페로니 피자가, 고급 피자도 아닌 그 저렴한 가격의 피자가, 기가 막히게 내 입맛에 맞는 걸 알기에.. 그 피자 한 조각을 먹고 갈까 하는 유혹을 몇 번이나 뿌리치면서 타임스퀘어를 향해 걸어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뉴욕 거리 피자가게의 흔한 낮과 밤, 그리고 베스트 드렁크 푸드인 페페로니 피자 (출처: nypost, insider)



도착한 타임스퀘어는 여전히 요란하고 다양한 간판들과 북적이는 사람들로 바빴다. 가장 뉴욕스러운 장소 중 하나인 그곳에서 나는 뉴욕의 냄새를 한껏 맡으며 인증사진을 찍었다.



2013년 뉴욕 여행 중, 유학 중이던 사촌 동생과 함께, 그리고 당시 매일 밤 저 모습으로 타임스퀘어 거리에서 연주하던 기타리스트~ 요즘에는 뭘 하시려나 ㅋㅋ
2019년 당시, 첫 번째 목표 달성 ㅋㅋ



사진을 찍자마자 날아가듯 향한 곳은 바로 칙필레 (Chick-fil-A). 칙필레로 말할 것 같으면, 1946년 미국 아틀란트주에서 시작하여 현재 미국 전 지역에 약 3천 개의 점포를 보유한, 오너가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주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미국 전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치킨버거 프랜차이즈 브랜드 중 하나이다.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넓고 넓은 미국 대륙이기에 근방 지역에 점포가 없으면 먹을 수 없는 아주 귀하고도 아주 맛있는 치킨버거다.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때에 아주 운이 좋게도 집 바로 근처에 칙필레가 있었다. 한주에 두세 번은 칙필레 소스를 더한 치킨버거와 치킨너겟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굉장히 심플한 치킨버거로 보이는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실제로는 치킨버거가 아닌 치킨 샌드위치라고 하는데, 몇 년 만에 먹는 치킨 샌드위치와 치킨너겟의 맛에 감격을 하며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 거주 중, 매주 가던 내 단골 집 ㅋㅋ
2019년 당시, 두 번째 목표 달성 ㅋㅋ



여유롭게 뉴욕을 더 즐길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곧바로 배로 복귀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피어 90 쪽으로 방향을 잡고 발이 향하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본 듯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나의 첫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몰몬의 책 (The Book of Mormon) 간판이었다. 당시 뉴욕도 처음이었고,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처음이었다. 고등학생 때 클라리넷을 전공하면서 수차례 무대에 올랐었는데, 당시 극장은 내가 올랐던 무대보다 훨씬 작은 극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에 들어간 순간 내가 마치 브로드웨이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흥분했고 뮤지컬을 보는 내내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2014년 뉴욕 여행 중, 뮤지컬 몰몬의 책
2019년 당시, 우연히 지나간 같은 극장



헤아릴 수 없는 아쉬움도 사치다. 나는 배에 도착하자마자 쉴틈도 없이 유니폼만 갈아입고 업무로 복귀했다. 그래도 그 아쉬움은 세일어웨이에서 해소시킬 수 있었다. 외출시간을 다른 동료들보다 짧게 가진 대신 세일어웨이를 볼 수 있도록 쉬는 시간을 쪼개서 넣었기 때문이다.


멀어지는 뉴욕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배에서 바라본 상쾌한 바람의 파란 하늘과 바다, 그리고 기막히게도 햇빛이 비춰주어 눈이 부셨던 자유의 여신상은 그 아쉬움을 싹 녹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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