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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Oct 17. 2021

내 공간에 숨결을 불어준

2년이라는 세월 동안 내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동작구의 어느 한 공간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동네에서 나와한 공간에서 함께 먹고, 자고, 얘기하고, 지내왔던 내 집에 숨결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떠날 때가 되니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건가 싶을 수 있겠지만 묘하게 내 소중한 집이, 이 공간이 다른 사람의 공간이 된다는 게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한 기분이든다.


처음 엄마의 손을 잡고, 용산역에서 내려 사회생활 시작의 첫 집을 구하고 계약서를 써 내려가는 순간 든 생각은 "내가 과연 이 서울에서 1년 간 버틸 수 있을까?"

였다.


당시 25살이었던 나는, 집을 구하고 다음 날 회사로 들어갔던 순간을 기억한다. "땡땡 씨, 여기 컴퓨터 켜고 업무보고 쓰고...", "옆에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원이니까친해지고.." 등등 사실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사원과 많이 친해졌다. 하지만 그는 3개월 뒤,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한 연예매체의 기자였다. 매일 되는 트래픽 압박에 내 또래 사원 친구는 퇴사를 결정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통이라곤 되지 않는 대표 사이에서 오직

실적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말도 안 되는 대우에 사람이 지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즈음 많은 선배들이 퇴사했지만, 나는 여러 연예인을 만나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 유일한 재미에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텼다.


이건 정말 표면적인 이유이며, 정말 내가 그 오랜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건 한 남자 덕분이었다. 자존심 싸움으로, 헤어졌지만 내가 변해가는 과정을 누구보다 옆에서 가장 크게 느꼈을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다.


나는,그분 때문에 서울에 있고 싶었고 일을 끝까지 하고 싶었다. 그만큼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자주 가던 고깃집에서 정직원이 된 것을 축하하는 날이었는데, 짠 하더니 먼저 축하라도 받고 싶은 나에게 계약서 안에 담긴 월급을 봤다고 실토했다. 그는 돈을 더 벌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직하려는 노력을 내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지만, 당시 나는 적어도 '축하'가 없었던 그의 태도가 속상했고 결국 또 다투게 되었다.


2년 뒤 그 일을 생각해보면, 내가 참 솔직하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느 기업보다 안정적인 큰 공기업 N년차 사원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 구나라는 느낌도 들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나는 나를 위한 말에 상처를 받고, 그날 싸운 뒤 함께 집에 돌아와 짐을 싸는 그를 말렸다. 애꿎은 돌돌이 청소기로 마룻바닥을 쓸며 "나는 그 말이 정말 상처였다"

고 말했다.


그 추운 겨울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책상 앞 한 구석. 그리고 헤어지고 매일 매일 울었던 내 이불속 한 장면들. 집 안을 꾸리기 위해 함께 갔던 홈플러스 등등 집안 곳곳에 처음 나와 함께했던 그 남자와의 추억이 물들어져 있다.


그 이후에도 친구, 가족들의 때가 곳곳에 묻기도 했고. 엄마가 크게 아팠을 때, 직접 간호하며 호전되고 있음을 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 좁은 방 안에서 엄마,

아빠, 내가 함께 잤던 소중했던 기억.


뿐만 아니라, 그 남자 이후에 만난 남자 친구와도 소중한 기억들이 많이 묻어있는 그런 곳이었다. 뜨거운 여름날, 새벽 4시까지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영화 얘기를 떠들어댔고, 다음 날 집 앞 칼국수 집에서 사귀기로 했던 그날들. 하지만, 아무래도 시작을 함께했던 사람이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거겠지.


지금 즈음, 다른 사람과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옆에 있지도 않는 사람이 정말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의 사랑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홀로 간 홍콩 여행에서 그를 만나, 정말 푹 빠져서 한동안 많이 사랑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만큼 나는 연애가 나 우선이었고, 내 자신을 잃어갔다. 그 역시, 힘들게 고생하는 나의 일정에 맞추며, 소위 말하는 '가난한 연애'를 해왔으니 지쳤을 것이다. 그가 함께 있어서, 행복하고 좋았지만 그를 잃음과 동시에 나는 자립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나는 연애에 있어 나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연애를 부수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를 최우선으로 두는 상대를 볼 때마다 과거의 내가 보이는 것 같아 마음속이 조금 찌릿할 때가 있다.


솔직히, 최근에는 그런 우선순위가 다 의미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기분과 전반적인 의지를 지배하는 것들이 그의 말과 태도가 될 때가 있고, 그렇게 전달된 이야기들이 다시 내 삶을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다, 이제 세를 내놓고 여러 세입자들에게 내 집을 보여주기 위해 방청소를 하는데 정말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정말 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 참 잘 살고, 잘 버텼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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