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리의 일기
# 기쁨이라는 사치
우리집 아파트 화단에는
아이들이 유독 많이 뛰어다니는
분수대가 있습니다.
넓은 공간이 거의 유일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유독 더 그곳을
뛰어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오후 4시쯤이 되면 영낙없이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요.
"꺄악"
고도로 형성된 주파수.
들어본적 없는 소리는 파장이 되어
샷시 두개와 우리집 안쪽문을
뚫고 들어
결국에는 제 고막까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럴때 한가지 의아한 점이
들때가 있어요.
"도대체 애들은 뭐가 저렇게 기쁜걸까?"
뭐. 이런 생각이 드는거죠.
#억압이 기본이 된 사회
에리히프롬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남겼어요.
"우리는 점점 인간같은 기계와
기계같은 인간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억압이 기본이 된 사회에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어요.
획일화, 대중화, 기운없음, 소비의 반복..
그러나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무엇보다 억압된 사고 방식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큰 억압에 눌려있어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듯 하지만,
종국에는 많은 것을 타협하며 그럴듯한
일반적인 생각으로 마무리 하게 되어요.
"이 말은 안 좋아하지 않을까?"
"굳이 이런 것까지 말 할 필요있겠어?"
이런 무수한 타협들을 남무하게 됩니다.
소설가 김영하씨는 이런 말을 했어요.
"소설이란 글을 읽는 독자들이
결코 하지 못 할 생각을
대신 하기 위해서 적는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대리 해 주는
무언가에 열광하죠.
때론 돌고래보다 높은 소리를 내는
아이들의 기쁨은
이 억압된 사회에 대한
마지막 보류 같이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삶을 사랑하는가?
가끔 저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여러분은 삶을 사랑하시나요?
대게의 사람은 이런
황당 무게한 질문을 듣고
이렇게 반응합니다.
"뭐? 당연하죠.
제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 줄 아신다면
그런 말씀 못 하실거에요."
아. 때로는 시무룩하게
지쳐있는 얼굴빛을 드러내며,
"전혀요. 죽지 못해 삽니다."
이런 반응을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많은 이들이 정말 열심히 살아요.
(특히 우리나라는 객관적으로도
정말 열심히 사는 나라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질문에 대한 충분한
대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을 사랑하시나요?
오늘 우리 이 질문을 그냥 가볍게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삶을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삶을 사랑하는 이의 향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에게는 때론 지독할만큼,
삶의 풍요로운 향채가 느껴지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들은 사회에서 인정하는
특정분야가 결코 아니에요.
즉 어디에서도 우리는
이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어요.
그 중 제가 만난 사람이 있어요.
한번은 결혼식을 가다가
구두굽이 나간거에요.
그래서 근처에
(지금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는)
구두방을 찾아갔습니다.
좁고 허름해 보이는 구두방안에는
다리 한쪽이 없고
얼굴이 시꺼멓게 물든
아저씨 한분이 계셨어요.
그는 대비된 색채를 가진 자신의
치아를 드러내고는
웃으면서 "어서오세요."라고
저를 맞이했습니다.
구두방 안에는 20대로 보이는
한 남성분이 먼저 와서
자신의 부츠를 닦고 있는
아저씨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열심히 구두를 닦던 아저씨가
그 분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손님. 이 부츠는 언제 사셨어요?"
급작스런 질문을 들은
남성분은 조금 당황스러운 듯
그 아저씨를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3년전이요."
아저씨는 씨익 웃으면서 말하는거에요.
"3년간 부츠가 애를 많이 썼네요.
구두굽을 보면
얼마나 걸어다니는지 보이거든요.
손님의 부츠에
그런게 보여요. 하하."
대꾸도 하지 않고 그 남성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손님의 반응에
전혀 게의치 않은 듯 말했어요.
"구두는 말이죠. 사람의 삶을 닮아있어요.
저는 손님의 구두를 보면 그런 것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다 되었습니다.
이제 기쁨을 신고 다니세요."
그 아저씨의 기쁨어린
미소를 바라보는데
문득 저는 이 곳에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아저씨는 제 구두도
정성껏 고쳐 주셨습니다.
말도 안되게 값싼 가격인지라
저는 현금을 꺼내 그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건냈습니다.
그리고 물어봤어요.
"아저씨 제 구두에는 뭐가 보여요?"
그러자 아저씨는 저를 보고 말했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손님처럼 웃고 있네요. 하하."
이 구두집은
자신의 구두는 필요없는 한 분이
타인의 구두를 자기것처럼
닦아주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저는요.
그런 사람이 있는 곳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동네에 숨어있는 삶을 사랑하는
이들의 공간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 곳곳에 있어요.
그들은 일을 하면서도
진짜 사람들을 만나고,
진짜 대화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술집을 갈때에도,
약국에도 그런 곳을 찾아갑니다.
(저는 가까운 곳이 아닌 오로지
그 약국만 갑니다.)
자본주의가 가득한 친절함과는 전혀 다른
가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곳이 있거든요.
이런분들은 일보다 삶을 먼저 삽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그것이 전제가 되어 주기 때문에,
빨리 그 일을 처리해달라는
우리의 성급함 앞에서조차
우리에게 따스한 미소로
먼저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저는 여러번 그들의 여유로움 앞에서
반성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지금 당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도 저는 몰라요.
그렇지만 당신에게 삶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라고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삶은요.
우리에게 모든 것들을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바쁜 우리는 내어준 그것들을
바라볼 줄 모릅니다.
그래서 자주 불평하고, 불안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애써 지우기 위해서
획일화된 사회가 지시한 것처럼
움직이는 것에 급급합니다.
그리고 또 반복된 공허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멀리서 내려놓고 본다면
우리가 사는 삶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해주고 있어요.
따스한 햇살을 가득 내어주고,
평온한 공간을 마련해줍니다.
때에 맞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적당히 기회라는 녀석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마실 수 있는 물도 주고, 신선한 바람도 선물 합니다.
위로와 평온을 주는 친구들을 건내주기도 하죠.
그렇게 삶은 우리를 바라봐주고 있어요.
신기루에 쫓아 우리는 그 삶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까먹습니다.
존재가 하찮아 보이니,
그 안에 소비를 채우려고 합니다.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은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그 안에는 삶이라는 빛이 언제나
가득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죠.
#삶을 사랑하세요.
가족보다, 돈 보다, 심지어 나보다
여러분의 삶을 먼저 사랑하세요.
내일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그토록 불평하던 내 삶이 전혀 아쉽지 않을까요?
물론 삶이 지치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이 올거에요.
그럴때에는 우리 안에서 삶을 사랑하는 이의
향기를 한번 쫓아보세요.
머지 않아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럼 우리에게 먼저 웃어주는
이들의 향기에 감겨
내 삶을 사랑하는 법을
온 몸으로 기억해보자구요.
그러다보면 어느날 여러분 곁에서
삶에 지친 이들이 보일때,
먼저 한번 웃어주고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지 않을까요?
획일화되고 억압된 사회에서,
효율없고 불필요한 행동으로
타인을 따뜻하게 해 주는
그런 삶을 사랑하는 이를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어느날.
여러분의 삶에 그런 이들이 나타난다면,
안녕하세요. 고마워요.
이렇게 씨익 한번 웃어주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