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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들리Ridley Aug 05. 2024

낭만 빼면 시체입니다만?

리들리 수필

  날이 좋은 봄날과 가을날에는 가끔 시간을 내어 삼덕동 3가에 들른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자리한 동네인데, 그곳의 분위기와 가게들의 모습을 좋아하기에 시간을 내 어서라도 가는 편이다. 볕 아래서 커피 한 잔만 걸으며 마셨을 뿐 인데도, 집에 돌아왔을 때 시간은 이미 저녁을 넘어서 있다. 가끔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아마 나는 돌아오는 가을에도 같은 취미를 하고 있을 테다.



  '낭만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낭만이라는 개념을 향해 품어온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쩌면 나라는 개인 한 명의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수 WOODZ 씨가 만든 신조어인 '굳이 데이'가 소소하게 유행했던 일을 생각하자면, 낭만을 찾아가는 일은 지극히도 비효율적임을 이미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낭만은 효율과 거리가 멂에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 또한 그 뒤를 잇고 있기도 하고. 애초에 '낭만'이라는 단어는 현실에 메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낭만을 망각한 존재, 혹은 사회는 필연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다. 효율만 따져가며 낭만을 등한시했다면, 이미 휴일이나 기념일 따위는 내팽개친 채로 모두 돈 벌 궁리만 했을 테니. 더 많은 돈을 더 쉽게 버는 법을 온종일 골몰했겠지. '삭막한 현대 사회'라는 말이 꽤 오래전부터 쓰이는 현실을 보면, 우리와 우리 사회는 이 미 낭만의 상당수를 잊고 잃었을 확률이 높다.



  고등학생이었을 적, 공학과 과학에 점차 밀려났던 인문학의 가치가 재조명되었었다. 그것도 명망 높은 석학, 수많은 기업의 총수, 이에 더해 TV 프로그램까지. 이들은 모두 인문학이 여타 실용 문학보다 돈벌이에 비효율적인 것은 현실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문학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일갈하듯 강조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일리 있는 의견들이었다. 언어를 제외한, 그러니까 소위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이 취업 시장에서 힘을 못 쓰는 게 더는 생소하지 않은 보편적인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엄연한 문학도였기에, 학년을 거듭하며 인문학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인문학을 통해 사고와 사람이 깊어지는 순간을 체감할 수 있었으니.



  인문학과 낭만은 연관이 깊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낭만을 만드는 문화는 인문학에서 출발했으니. 결정적으로 비효율적이지만 인류는 그것을 늘 원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고취해서, 혹은 그저 단순한 심심풀이를 위해. 무엇이 되었든 가장 오래된 존재인 데는 이유가 있다. 낭만은 인류에게나 개인에게나 중요한 개념이었다.



  각자의 낭만이 있다. 나는 15분이면 도착할 집을 날이 좋다는 이유로 90분 동안 이리저리 돌아간다. 내 친구는 자주 수업을 빼먹고 야구장에 간다. 어떤 이는 영화 <라라랜드>를 계절마다 돌려 보며 낭만을 찾고, 어떤 이는 굳이 먼 길까지 가서 회 한 접시를 산지에서 먹는다. 저마다의 낭만은 색과 모양만 다를 뿐, 모두 삶을 풍요롭게 한다. 상당히 오래되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한 가지 바라길, 나의 낭만이 옳은 선택이었으면 한다. 그것이 아무리 비효율적이었고,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늘 후회 없는 채로 기억에 남아있었으면 한다. 내가 정말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일 테니. 당신의 낭만도 행복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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