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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들리Ridley Aug 06. 2024

영화관 아래 스타벅스

리들리 수필

  일 년이 넘도록 매일 오후면 영화관 아래 스타벅스에 갔다. 소설을 쓸 때나, 시를 쓸 때나, 수필을 쓸 때나. 늘 그곳의 창가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하다못해 그곳의 매니저님께서 얼굴을 외우시고는 늘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준비해두시거나, 명절 안부를 물어보실 정도로 자주 갔다. 많은 남자가 그렇듯, 자주 가는 가게의 점원이 내 얼굴을 외운다는 사실에 얼굴이 조금 붉어졌지만, 반대로 나를 기억해주신다는 사실에 은근히 감사하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 혹은 다른 위치의 스타벅스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생소하기도 했고, 이래저래 글을 쓰는 도중에는 꽤 예민한 편이기에 늘 그곳 스타벅스의 창가 자리가 아니면 안 되었다. 꼭 그 위치여야만 했다. 때문인지 최소한 오후 2시 이전에는 가야 창가 자리를 사수할 수 있다는 사소한 노하우를 터득할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글을 쓸 수 있었고, 그렇게 쓴 글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독립 출판을 맛보고,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리들리 계정을 꾸준히 키울 수 있었고. 덕분에 앞날이 막막한 대학생은 좋아하는 일로 나름 성장할 수 있었다. 감사하지. 꼭 글을 쓰지 않았어도, 스타벅스에 출근 도장을 찍는 일은 나만의 취미가 되어, 매일 산책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찌 보면 겪고 있던 우울증을 희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그곳에 가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집에서 작업하는 일이 언젠가부터 편해지기도 했고, 더군다나 요즘은 한낮 기온이 36도까지 올라가는 재앙 같은 날씨가 이어지니. 집에서 스타벅스는 오며 가며 30분은 족히 걸리기에, 땡볕 아래를 도무지 버틸 재간이 없었다. 영 좋지 않은 이유로 가지 않게 된 것은 아니었기에, 그저 그 공간과의 연이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연이라는 개념은, 감정의 요인이 아닌 그저 상황의 변화로 흩어질 수도 있으니.



  다만 그곳에서의 기억은 포근한 추억으로 남을 테다. 좋아하는 커피, 좋아하는 창가 자리, 그곳에서 써온 글들과 창 너머로 마주치며 인사한 아이들. 모든 존재가 그저 기분 좋게만 남아있다. 좋지 못한 기억은 없다. 애정할 수 있을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렇게 그곳을 오래도록 만끽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언젠가 다시 들렀을 때도, 그곳의 스타벅스가 품은 공기는 여전했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가을에 오늘의 더위가 누그러지면 다시 그곳에 가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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