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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들리Ridley Aug 17. 2024

내륙인에게 바다는 너무 멀어

리들리 수필

  바다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탁 트인 바다의 모습을 좋아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바다에 가면 숨통이 트인 물고기가 된 기분이다. 그래서 바다를 좋아한다



  다섯 살이었다. 가족들과 부산에 갔다. 바다에 관한 첫 기억이자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가족여행이다. 아쿠아리움을 갔고, 해운대에 갔다. 해운대에서 동생과 장난치다 신발이 흠뻑 젖기도 했다. 젖은 모래의 축축하고 찝찝한 촉감, 흐린 하늘의 풍경마저도 기억할 수 있다. 바다는 그렇게 내게 처음 다가왔다.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바다를 자주 가지는 못했다. 나는 내륙 지방인 대구에서 나고 자랐고, 그렇기에 한 번이라도 바다에 닿으려면 큰 맘을 먹어야 했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기차를 예매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더군다나 우리 집은 KTX 역과 멀었기에, 애석하게도 바다를 사랑해 온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바다의 이미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에 관한 몇몇 기억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다. 스물한 살의 늦은 봄, 제주도에 간 적이 있다. 친구 둘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는데, 그날의 제주는 하늘이나 바다나 참 맑고도 맑았다, 함덕 해수욕장이었을 거다. 휴양지에서 볼 법한 바다의 정석 같았다. 맑은 하늘과 바다, 눈부신 백사장, 그리고 선선한 바닷바람.

우리는 이틀 연속 그곳에 갔다. 어쩌면 그곳의 풍광에 홀렸던지도 모른다. 그곳에서의 나는 가만히 앉아 탁 트인 바다를 응시할 뿐이었다.



  수험생일 적 꿈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바다 근처에 집을 얻어 그곳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싶었다. 여유롭고 느슨한 삶을 바다와 보내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잊고 사는, 유효기간이 다 되어버린 꿈이지만, 그때는 그런 꿈을 꾸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나는 지나치게 메말라 있었다. 당시에 쓴 글과 당시의 기억을 돌이켜 보자면, 나의 삶은 잔인하게도 삭막했다. 그래서였던 건지, 총천연색으로 가득 찬 바다를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숨통이 트였으면 했다. 죽어버릴 것만 같았거든. 결국, 안타깝지만 바다 한번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졸업해 버렸지만. 아무튼, 나는 바다를 사랑하고, 그렇기에 나는 지금 바다에 가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다. 나처럼 자유로운 일탈의 상징인 수도 있겠고, 바닷가에 사는 이에게는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부럽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다. 또 다른 질문 하나 더. 내게 바다 같은 존재가 당신들에게도 있는지. 바다가 아니어도 좋다. 어쩌면 친구가, 어쩌면 애인이 바다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모쪼록 나와 당신들의 바다를 잘 간직해, 잃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의 바다에 행운이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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