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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자몽 Dec 19. 2023

그놈이 다 그놈이야. 자네 하기 나름이라고.

청자몽 연대기(19)

7년 연애하고 결혼한 우리는 긴 연애기간 동안 여러 번 다투고 헤어지고 만났다. 연애 초반, 처음으로 크게 싸우고 냉전기간을 보내던 때에 이사님께 들은 이야기를 쓴다. 연대기 열아홉 번째 이야기 :



2000년에 들은 이야기
그놈이 다 그 놈이다.


12월 중순인데, 비가 내린다. 겨울비.. 겨울비는 왜 슬프다고 할까? 비는 다 똑같은 비인데, 겨울에 내리는 비는 슬프고 봄에 오는 비는 상큼하다는건 편견 아닐까? ⓒ청자몽


90년대 말, 2천 년 초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진짜 고마웠던 분이 생각났다. 바로 회사 이사님이다. 이사님께 들은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한다고 말했던 즈음에 이사님이 해줄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다. 남자친구하고 잘 지내냐고 물으셨다. 뜬금없이요? 네. 그냥저냥 지내요. 저번에 심하게 다투고 한두어 달 안 보는 거 같더니, 화해를 했나 보네요. 네. 뭐 그냥저냥.. 유야무야 됐어요.

잘 됐네. 네?
그게 살다 보면 알아요. 거기서 거기고, 그놈이 다 그놈이야. 진짜요? 에이.. 아닐 거 같은데요? 아니야. 내 말이 맞다니까. 굉장해 보이고 좋아 보여도 다 거기서 거기라고. 중요한 게 자네 하기 나름인 거야. 상대방도 사실 내가 만드는 거거든. 자네 하기 나름이라고.

하시면서 물 수水자를 써주셨다.
물이야. 물. 물이 보면 되게 약한 거 같은데, 힘도 세고 무서운 거야. 어디를 가든 물처럼 잘 섞여서 원래 있던 사람처럼 잘 지내요.

라고 두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놈이 다 그놈인데, 나 하기 나름이다./ 어디 가든 물처럼 잘 섞이는 사람이 돼라. 곱씹어 볼수록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나는 어차피 나갈 사람인데, 조언해 주신 이사님께 감사했다.



그 말이 맞을지도...

이후 몇 번의 고비가 더 있었지만, 다 지나가고 7년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됐다. 그리고 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결혼은 훨씬 더 복잡하고 큰 문제가 많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훨씬 더 복잡하다. 끝도 없다.

가끔 여러 생각이 날 때가 많지만, 이사님이 해주셨던 조언이 생각난다. 나하기 나름이라는 말 말이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문제가 또 있을 것 같다. 문제란 없을 수가 없으니.

생각해 보면 내가 제일 문제다. 나는 그대로 나여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어떤 상대를 만났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나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최소한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사람은 되지 말자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을 이사님은 어떻게 그런 충고를 해주실 수 있었을까? 20 몇 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 봐도 참 대단한 거 같다.

아이의 이름은 '물'과 관련된 이름을 지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어디를 가든 원래 있던 사람처럼 잘 섞이라는 뜻을 담았다.

무슨 말을 하든, 어떤 글을 쓰든.. 좋은 느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이사님의 말씀처럼 강렬하게, 내내 생각나는 명언이 아니어도 좋다.



원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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