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교는 학부든 대학원 과정이든 모든 교수님들이 매 시간 엄청난 양의 숙제를 내주셨다.
근데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학생들 모두 투덜대면서 정말 다~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 배운 나도 학생들에게 매주 숙제를 내주는데 후배이자 제자인 이 분들도 정말 다~ 해온다.
이러한 학교 분위기에서는 학교를 안 다니는 경우의 수는 있어도
숙제를 안 한다는 경우의 수는 아예 존재 자체를 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대학원 때 일이다.
전공 필수 과목이자 전공자에게 제일 중요한 과목이 있었다.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 감독님이신 교수님께서 담당하시며 마찬가지로 매주 과제를 주셨고 학생들은 정말 기를 쓰고 열심히 숙제를 했었다.
성실로는 어디서도 지지 않는 나도 열심히 써갔다.
그런데 나는 이 수업을 마치고 나면 진짜 매주 몸살을 앓았다.
여기서 '몸살'은 뭐 그냥 그 정도로 힘이 들었다는 표현하기 위한 직유가 아니고
실제로 수업을 마치고 오면 토하고 열이 나고 설사를 하고 배를 움켜쥐고 뒹굴 정도로 아팠다.
거의 모든 시간 그랬다.
사실 그 당시에도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몸살을 앓는지 알고 있었다.
열받아서다.
진짜 화가 나고 열이 받는데 화를 낼 수가 없어 이러는 것이었다.
대들고 싶고 내가 써온 글이 맞다고 우기고 싶은데 그게 불가능한 이유는 교수님이어서, 어른이어서가 아니다.
교수님의 팩폭을 이길 만한 재주가 없다.
조목조목 화도 안 내시고 던지시는 질문형 지적 앞에서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 질문들 앞에서 드는 생각은
'나는 바보인가? 아니, 저걸 왜 애초부터 생각을 못했지?'였다,.
그러고 있을 때마다 내 과제를 도로 건네시며 같은 말씀을 하셨다.
" 그러게.. 쓰지 말라니까..."
그러면서 나가실 때는 또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 모두 다음 주까지 다시 써와라"
아이고... 진짜 미칠 노릇이다.
쓰지 말라며~ 아니, 써오라며~
이러니 토사곽란이 나지!!
그런데 그때 그 말씀을 나는 훗날 이해했다.
내 작품을 쓰고 또 쓰기를 반복하고
개봉도 해보고
상도 받아보며
내 글을 더 많이 오랫동안 써오며 스토리라는 것이 무엇일지 골머리를 쓰다 보니 그제야 알아지더라.
그 말씀을 쉽게 한마디로 정의하면
묘사를 쓰지 말고 서사를 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 말의 함의도 몰랐을 뿐 아니라
알았다 한들 묘사와 서사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니 진짜 스토리의 단초가 될 뼈대를 세우는데 써야 할 시간을
소소한 에피소드, 튀는 캐릭터에 매몰 되어 이것이 스토리라고 우기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을 만났다면 이제
초보작가인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쓰지 않아야 하면서 동시에 써야 하는 것.
다시 말해 묘사가 아닌 서사를 정리하는 것으로 넘어가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서사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