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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트리트먼트가 뭔지 모른다.

by 영화하는 이모씨

자! 그럼 이제 트리트먼트를 쓰면 된다.

그런데 쓸 수 없다는 걸 곧 깨닫게 된다.

알고 있던 대로 트리트먼트를 쓰면 될 일이지 뭐가 문제일까?

바로 트리트먼트가 뭔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이제 막 시작하는 작가들 대부분은 트리트먼트의 필요성은 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요성을 아는 작가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들이 중요성을 모르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가 쓴 트리트먼트가 자기 작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리트먼트를 쓴 것이 아니라 그냥 쓰고 싶은 걸 쓰고 그걸 트리트먼트라고 불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건..... 트리트먼트가 아니다.


그럼 트리트먼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면교사들을 살펴보자면,


잘 못 쓴 트리트먼트 1


주인공의 전사를 쓰는데 거의 80%의 분량을 소비한다.

스토리 안에서 그 전사前史가 의미가 있으려면 어떻게든 스토리 안에 녹아져 있어야 한다.

스토리가 시작되기 전의 주인공의 과거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작가들이 트리트먼트를 쓰겠다고 앉아서 스토리가 시작되지도 않은 이전에 일들을 쓰는데 엄청난 공을 들인다.

어릴 때는 어땠고 어떤 일이 있었고...

이게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단서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인물의 모든 인생이 아니라 이 스트리에 반응할 인물의 전사에만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그 인물의 인생전부를 <트루먼쇼>에 담아낼 것이 아니므로.


나는 어떤 후배의 33장의 트리트먼트에서 정말 진실로 진실로 말하는데 30장을 전사에 할애한 것도 읽어봤다. 이런 글은 가슴이 아프다. 필요 없는 작업에 이리 공을 들였으니..


잠깐!

혹시 자기 이야기 같다면 너무 비관할 일만은 아니다.

이런 트리트먼트를 누가 쓸까? 당연히 초보 작가들이라고 말하면 우답은 아니겠지만

사실 이런 트리트먼트를 쓰는 작가들은 묘사에 특화된 경우가 더러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라는 것이 대부분 묘사인 것이다.

사실 묘사에 재주가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장점이다. 드라마나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묘사와 서사를 구분하지 못한 채 지금 트리트먼트를 쓰는 시점에서도 묘사=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트리트먼트에서 묘사는 아이디어라고 할 수 없다.



잘 못 쓴 트리트먼트 2


트리트먼트에 이 서사와 묘사가 뒤섞여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앞서도 밝혔듯이 서사와 묘사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서사를 정리하다가 떠오르는 반짝이는 묘사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함께 적어놓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작가가 스스로 서사와 묘사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고 이런 묘사들에 현혹되지 않고 서사를 운용할 수 있다면 아무 상관없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말리고 싶다.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서사에 상관이 없는 묘사는 버려야 한다. 그런데 반짝이는 묘사는 정말이지 이미 작가가 애정하고 있다. 절대 삭제가 안된다.

그냥 지우면 될 일 같지만 진짜 어렵다(실제로 나는 삭제할 때 내가 좋은 작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런 묘사들은 작가를 현혹시켜 서사와 상관있는 척을 하며 계속 반짝인다.

작가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간다.

그나마 서사를 망치지 않고 저만 반짝이고 있으면 다행인데 서사를 틀어서라도 이 묘사를 말이 되게 하려다 보면 사달이 나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잘 못 쓴 트리트먼트 3


트리트먼트를 굉장히 추상적인 문장들로 써놓는 경우다.

이렇게 말하니 뭐 대단히 뜬구름 잡는 글을 써놓은 경우인가 보다 싶겠지만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여자주인공 A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커리어우먼이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문장은 엄청난 문제가 있다.

이렇게 써놓으면 도대체 어떤 인물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읽는 사람의 경험과 상상력에 완벽히 의존한, 정체가 없는 문장이다.

이 문장만으로는 아마 써놓은 작가도 모를 것이다.

읽어봐도 모르는 글을 트리트먼트라고 할 수는 없다.


간혹 소설이나 시에서 재능을 보여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시작작가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 중에 더러 이런 함정에 쉬이 빠지는 분들이 있다.

사실 시나리오나 극본, 희곡에서 수려한 문장력은 1도 필요하지 않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이대로 작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 태생이 영상이 되기 위한 보조자료이다.

상은 배우와 감독, 촬영과 편집등을 통해 나오는 것이지 아무리 멋진 문장을 써넣은다고 해서 관객들에게 닿지 않는다.


대사빨과는 조금 다르다. 대사가 좋으려면 핵심을 관통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는 명대사들은 그 자체로는 별거 없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내 안에 너 있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라면 먹고갈래요?"


문장만 보면 수려하기는커녕 단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의 절묘함, 극한의 감정이 더해져 비로소 명대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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