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통화하며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유영, 오늘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다고 큰소리치고 전화를 끊는데 아파트 입구 앞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재영과 마주쳐 버린다. 당황해 멈춘 유영과 달리 먼저 들어가 버리는 재영. 둘러보다 마트로 향한다. 과일 세트를 사고 계산하다가 밖에서 걸어가던 건영과 눈이 마주친 유영, 반갑게 손을 드는데 건영이 무시하고 지나간다. 민망한 유영, 담배를 사려다가 참고 막대사탕 다섯 개를 계산한다.
이 트리트먼트는 언뜻 보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기적으로 써지지도, 유혹적으로 써지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서 작가 자신을 위해서도, 소통을 위해서도 마뜩지 않다는 말이다.
이 글은 학생이 쓴 단편시나리오의 트리트먼트 첫 부분이다.
전체분량으로 따지면 5% 정도로 유영, 재영, 건영의 관계를 보여준다.
셋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살갑거나 반가운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이름으로 보아 형제자매가 아닐까 싶다. 이런 관계야 뒤를 읽어보면 보이겠지만 잠깐!
그럼 도대체 주인공은 누구일까?
우리는 몰라도 작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작가가 알까?
실제로 이 학생은 삼 형제가 모두 주인공인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니다. 계속 말하지만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작가가 계속해서 삼 형제라고 말한다면 결과적으로 작가는 주인공을 모른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삼 남매 중 첫째인 유영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아래와 같이 정리되어야 한다.
AFTER 1차
유영이 000과 전화통화를 하며 오늘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다고 큰소리치며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온다, 그때 유영이 아파트 입구 앞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유영의 첫째 동생과 마주친다. 유영은 당황해 전화를 끊는다. 유영은 자신과 달리 무심한 첫째 동생이 현관 안으로 먼저 들어가는 것을 본다. 유영이 따라 들어가는 것이 어색해 주위를 둘러보다 마트로 향한다. 유영이 마트로 향하던 중 입구에서 과일 세트를 사들고 나오던 둘째 동생과 눈이 마주친다. 유영이 반갑게 손을 드는데 둘째 동생은 무시하고 지나간다. 유영은 민망하다. 유영은 담배를 사려다가 참고 막대사탕 다섯 개를 계산한다.
차이점이 보여야 한다.
사실 배우들의 동선이나 액팅은 비슷하다. 하지만 모든 문장은 주인공이 주어인 형태로 바뀌고 모든 인물관계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렇게 하면 주인공에게 집중하다 보면 뒤가 달라진다. 어쩔 수 없다.
실제로 나는 피드백을 기대하는 시작작가들에게 다른 조언대신 이렇게 주어만 바꾸어보라는 주문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면 작가는 이 과정만으로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집중력을 빼앗겼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백 마디 남의 조언보다 낫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글은 서사중심으로, 뼈를 발라놓은 글이 아니다.
예를 들면, 우영이 첫째 동생과 빼도 박도 못하고 아는 척 안 할 수 없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인물들을 몰아넣고 싶다면 현관 앞에 아니라 엘리베이터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영과 첫째 동생의 '무심한 관계'라는 서사를 보여주기 위해서 더 좋은 묘사가 무엇인지 찾아가며 더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아니, 바꿔야 한다.
그러니 현관 앞이던 엘리베이터던 이것은 묘사다. 바꿀 수 있는 것! 바꿔서 더 좋아지는 것!
마트, 과일세트, 담배, 막대사탕 이 모든 것도 같다.
이중에 서사의 묘사가 있을 수 있으나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완전히 뼈를 발라놓은, 서사중심의 트리트먼트는 어떻게 써야 할까?
AFTER 2차
유영이 000과 전화통화를 하며 오늘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하며 부모님 집으로 향한다. 그 앞에서 유영이 서먹한 사이의 첫째 동생과 마주친다. 유영이 같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마트로 간다. 유영이 마트에서 먼저 들었갔다 나오는 둘째 동생을 만난다. 유영은 반갑지만 둘째 동생은 무시하고 가버린다. 유영은 민망하다.
항상 수업을 듣던 작법서를 보면 읽을 때는 좋은 말인 것도 알겠고 맞는 말인 것도 알겠는데
돌아서고 나면, 그러니까... 어쩌라는 거지...
나는 좀 똘똘치 못해 그런가보다 싶지만 누군가 나같다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잼은 없겠지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