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2. 스토리는 사람하고 똑같다.

by 영화하는 이모씨

사람은 뼈와 살, 그리고 살을 감싸고 있는 옷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 선생님께서 옷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이없다 하시겠지만 나는 되러 의류를 제외하고 사람을 말하는 것이 더 어렵다.

대중목욕탕에서 일부러 지인과 약속을 하지 않는 한 벗은 사람과 마주치기는 해도 만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뿐 아니라 그의 뼈와 살집보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이 그 사람에 대해 의외로 많은 것을 증명한다.

필요에 의해 뼈와 살을 어찌하긴 어렵지만 옷은 변화무쌍하게 갈아치우며 다양한 나를 연출해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모는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정리를 해보았다.


사람 = 뼈 + 살 + 옷(ft. 액세서리 )


뼈는 없으면 안 된다. 뼈가 없으면 일단 사람이 없다.

뼈가 곧 사람이다. 골격은 그의 신장을 결정짓고 체구에도 일조한다.


살도 없으면 안 된다.

하지만 살은 누군가는 많고 누군가는 적기도 하고 누군가는 상체에, 누군가는 하체에 집중되기도 한다.

살은 단순히 보기에는 다 같아 보이지만 지방이냐 근육이냐의 따라 극명히 다른 쉐입을 보이고 그에 따라 같은 양이더라도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준다.


옷도 없으면 안 된다.

하지만 간혹 타잔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명품 아니면 절대 걸치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

화려한 칼라를 지향하는 사람도 있고 한 가지 색깔을 고집하기도 한다. 계절 없이 가볍게 입는 사람도 있고 여러 겹을 겹쳐 입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와 장소에 맞게 옷을 바꿔 입는다.


스토리도 이것과 똑같다.


스토리
=
서사(뼈)
+
서사이면서 묘사인 묘사로서 보통의 묘사와는 분명히 다른 묘사(살)
+
묘사(의류)


서사는 없으면 안 된다. 서사 없으면 일단 스토리가 없다.

서사가 곧 스토리다. 서사는 이야기의 구조를 결정짓고 작품의 사이즈에 일조한다.


'서사이면서 묘사인 묘사로서 보통의 묘사와는 분명히 다른 묘사(이하 서사의 묘사)'를 먼저 논하기 전에

이 한 문장을 쓰는데 거의 반나절을 쓴 것 같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싶지만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어떤 단어는 작법을 학문으로 하시는 분들이 만들어 주셨으면 싶다.

아니면 이미 만들어놓으셨는데 내가 모르는 것 일수 있다.

돌아와서. 이 묘사는 사실 묘사라기보다는 서사에 더 가까운 것이다.

옷처럼 버리고 새로 사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스토리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본질에 더 가까운 묘사를 말한다.

이 묘사는 서사에 완전히 붙어 있어

'하늘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스토리가 무한이 생성되는 것은

하늘아래 새로운 서사는 없는데 이 서사의 묘사들이 새로워지며 다른 스토리로 보이는 것이다.

거기에 묘사가 더해지면 독자나 관객들은 뻔하디 뻔한 서사를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로 인식한다.


묘사는 말 그대로 옷이고 액세서리다.

이것은 얼마든지 바꿔질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이 아니, 스토리가 더 돋보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수정가능하다. 그리고 필요에 의해 덜어 낼수도 있고 더 할수도 있다. 그런다고해서 서사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악세서리가 더하고 빠지며 전체적인 사람의 인상과 분위기가 달라지듯 스토리의 인상과 장르가 더 선명해지기도한다.


<킹더랜드>를 보자.

<킹더랜드>는 전형적인 '왕자와 캔디아가씨의 사랑이야기'이다.


이것이 서사다.

우리 아이들이 이걸 보고 있으면 내가 지나가다가 '오늘 ***하고 끝나겠구먼' 하면 어김이 없다.

아이들은 신기해 하지만 신기할 일이 전혀 없다. 원래 이런 서사는 이런 거다.

새로우면 다른 서사인 건데 그리로 간다 한들 다른 서사일 뿐 새로운 서사는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서사의 묘사가 붙는다.

'킹 호텔의 서자 본부장과 자신이 가장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평범한 호텔리어'라는 설정이다.

이것은 곧 <킹더렌드>의 정체성이 된다.

이것은 묘사처럼 갈아 낄 수 있으나 이걸 갈아 끼우면 <킹더랜드>다른 이야기처럼 보인다.

'식당의 서자인 셰프와 초보 요리사'라는 서사의 묘사가 붙는다면?

'비밀스러운 가정사를 가진 유명 영화감독과 막내 연출부'라는 서사의 묘사가 붙는다면?


'왕자와 캔디아가씨의 사랑이야기'라는 서사는 그대로지만 전혀 다른 스토리의 정체성을 갖으며 전혀 다른 스토리로 보이게 될것이다.


이제부터는 묘사다.

서사를 보강하기 위해 요즘 관객들, 독자들, 시청자들이 반응할만한 에피소드들로 채워 넣는다.

이건 내가 드라마를 안봐서 장면으로 예를 들지는 못하지만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서사에는

예 1) 둘이 돌발 사고를 겪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에피소드로 살을 붙일 수도 있고

예 2) 둘이 전여친 혹은 전남친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마음을 깨닫는다. 이런 살이 붙을 수도 있다.


자고 일어났는데 더 좋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면

얼마든지 지우고

다시 써도 되고

쓸 수 있고

써야 하는 것이 바로 묘사다.




그렇다면 지난 글에 이어 보자.

쓰지 말라는 글쓰기 과제는 바로 서사, 뼈를 써오는 과제였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나와 동기들은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마구 쏟아낸다.

한글자라도 더 써가야 더 성실하고 더 잘하는 작가라는 듯 미련하게도 많이 썼다.


그런데 이 단계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묘사아이디어는 갯벌과 같아서 한번 발이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와지지 않는다.

얼마든지 갈아 끼울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 에피소드가 신선하다, 괜찮다 싶으면 서사를 증명하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인지 뭔지 구별할 생각도 안 하고 손에서 놓치를 못한다.

아주 아귀가 터질 듯이 쥐고 안 놓는다.

그러면 문제는 서사가 커 나가질 않는다. 단단히 골격을 갖춰가야할 때에 이미 딱맞는 옷을 입혀놔서 옴짝달짝을 하지 못하며 서사는 뒤뜰어진다.

뒤틀어진 골격에 맞는 서사의 묘사가 제대로 붙을리도 만무하고.


그런데 말로는 이렇게 쉬운 이걸 진짜 다들 엄청 힘들어한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이렇게 다 아는 것처럼 잘난 척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그렇다.

그때마다 나는 나 자신과 학생들에게 같은 말을 한다.


떠오른 묘사는 잘 적어서 컴퓨터에 넣어 놓으면 된다.
그거 어디 안 간다


지금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지금은 뼈를 바로 세우는 것이 먼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