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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빠르게 가고 싶다면 바르게 가야 한다.

by 영화하는 이모씨

일단 쓰면 되지 왜? 서사(+서사의 묘사)부터 써야 할까?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게다가 빨리 완성하려면 더더욱이 서사만 골라 쓸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작업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의문도 들 수 있다.


그런데 전공자라면 이런 의문은 안들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아서라기보다는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알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다.

원래 그렇게 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보니 좋은 것이라 당연히 하는 것으로 된 것, 을 의미 하므로 더더욱이 그냥 물을 것도 없이 하면 된다.


그런데 그냥 하자니 자존심이 상한다면, 그래! 한번 따져보자.

도대체 왜 서사부터 써야 할까?


우리가 쓰는 것이 소설이든, 희곡이든, 시나리오든 그 형태를 갖춰서 써낸 첫 글을 초고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초고를 쓰기 전에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일단 이야기를 구상해 보는 단계의 글쓰기를 먼저 하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트리트먼트라고 부른다. 앞서 공유한 글에 준해서 바꿔 말하면


트리트먼트 = 서사 + 서사의 묘사


로 이해하면 된다. 이걸 사람에 비유한대로 바꾸면 일단 뼈와 살을 만들어 인간의 형상을 만들라는 말이다.

하나님도 태초에 사람을 만들 때 사람의 뼈와 살을 만들었지 옷을 입힌 채로, 혹은 뼈에 살도 없이 휘황찬란한 옷을 두른 채로 만들지 않았다

(감히 이런 비유를 들다니.. 시작작가들이 제발 한방에 글쓰기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에 나온 비유니 이해 바란다.)


그런데 트리트먼트라는 게 이렇게 간단히 설명할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트리트먼트'라는 다섯 글자를 다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당장 영화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작가는 30페이지 분량으로 정리가 된 글이 트리트먼트라고 하고

어떤 피디는 세장짜리 글을 트리트먼트라고 부른다.

물론 이미 나와있는 시나리오를 좀 더 효율적으로 대화하거나 수정할 단계에서는 사실 나는 30장 짜리라고 말하는데 상대는 3장짜리라고 말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전체 스토리에 대해 공유가 되어있으니 어떤 걸로도 소통에는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나는 시작작가, 본인이 이것을 좀 명확히 구분하고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 시작하는 시점에서의 트리트먼트는 작가가 갈 지도를 미리 계획하는 아주 즁요한 맵핑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하나도 안 중요하다.

3장짜리를 10장짜리로, 그다음에는 30장짜리로 스토리를 키워가면서

이름은 1차 트릿, 2차, 3차 해도 좋고

플랜 A, B, C라고 해도 상관없다. 첫사랑 이름, 지독했던 놈이름, 끝사랑이름으로 지어놓아도 괜찮다.

이런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스스로를 위해 반드시 영숙이, 민주, 경화라고 부르는 그 과정을 기록하며


서사

서사+서사의 묘사

서사+서사의 묘사+묘사

로 확장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woman-athlete-running-on-marathon-.jpg

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가 이 챕터를 말하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영화과 학생들은 당연하게도 장편시나리오나 드라마처럼 호흡이 긴 이야기보다도 단편 시나리오를 먼저 쓴다. 그러다 보니 떠오르는 것들이 짧고 단순하여 트리트먼트를 쓰지 않고 시나리오를 바로 집필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치고 들어내며 뒤죽박죽 되어봤자 열댓 페이지 남짓한 분량이니 그랬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트리트먼트를 써야 작업에 용이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나중에 장편 쓸 때는 그렇게 해야지.. 그랬던 거 같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잘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을 욕보인 것 같다.

선생님들께서 단편 쓸 때는 트리트먼트가 필요 없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나중에 하면 된다고 넘어가신 것도 아니다. 나의 오만방자함이 선생님의 조언을 뛰어넘은 것뿐이다.


그런데 이걸 깨달으려면 장편으로 넘어와봐야 한다.

뭘 아는 것 같고,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머릿속에 거의 다 나온 것 같다는 착각과 오만함에 빠져서 옴팡당해봐야 정신이 든다.

내가 그랬다.

빠르게 가려는 꼼수에 내가 걸려서 허우적 대다가 허송세월했다는 걸 알았을 때 그제야 선생님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스토리는 트리트먼트부터 쓰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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