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잘 난 주인공은 넣어두세요~

by 영화하는 이모씨

주인공은 너무 잘 나서는 안된다.

어느 책에서 주인공이 너무 잘 나서는 안 되는 이유를 관객들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너무 완벽한 인물이 나와 같다고 느끼기에는 허들이 있다.


그럼 <킹더렌드>의 구원 본부장(이준호 분)은 어떻게 설명할까?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이영준 대표(박서준 분)는?

설마... 나와 같다고 느끼는 거... 아니잖아.....


이모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지금껏 무수히 만나왔고 간절히 기다리는 드라마 속 실장님, 본부장님들은 설명이 안된다.

관객들은 그 잘난 남자 주인공에게 어떻게 공감하고 있는 거지?

그뿐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시의 주인공은 고귀한 가문의 일원(민음사 <연극이해와 실제>中) 이어야 한다고 했다.


잘 나기 그지없는 주인공들을 우리는 무수히 만나왔는데 잘나면 안 된다니...

이모가 이래서 잘 나가는 감독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은 다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주인공은 '욕망하는 자'라는데 기인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통장 잔고가 10만 원인 주인공이 20억 판돈이 걸린 살인게임에 참여한다.

통장 잔고가 10억 인인 주인공이 20억 판돈이 걸린 살인게임에 참여한다.


누구의 욕망이 더 클까?

간단한 문제이다.


주인공이 잘 나면 안 된다고 말하는 핵심은 '잘. 났. 다'라는 관객 나름의 기준에 준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욕망하는 그것으로부터 열등해야 한다는 말이다.(아주 열등해야 한다고 쓰지 않았다. 아주 중요한 지점이라 체크!)

욕망하는 대상과 주인공의 현재 사이의 간극이 핵심이다.

그래야 욕망하는 것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주인공이 달려가야 할 험지가 충분히 확보가 된다.

실장님들, 본부장님들이 엄청난 재력가에 지적 능력 충만한 갓벽남임에도 여전히 멜로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가장 열등한 포지션에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냥 사랑도 아니고 영원한 사랑, 순수한 사랑, 여자의 열등한 조건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사랑말이다. 그러니 '실장님과 인턴사원', '대표님과 비서'와 같은 '왕자님과 캔디'의 플롯은 오늘날도 미래에도 먹힐 수밖에 없는 스토리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것 주인공의 조건도 같은 맥락이다.

좀 더 깊이 이해하려면 비극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비극은
뚜렷한 여러 가지 아름다움으로 고양된 언어를 사용하여
서술로서가 아니라
배우가 행동으로 나타내는 형태이며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는 사건으로
이를 통해 이와 흡사한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를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시학'中-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비극의 핵심은 주인공이 나락으로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주인공이 대단한 인물질수록 대환영이다.

에드워드 라이트 <현대연극의 이해>에서는 비극의 주인공은 위대한 인물이거나 한계층을 대표할만한 인물 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말인즉 쫄딱 망해가는 과정을 보고 싶은 대상은 엄청 칭송받는 인물이거나 주인공 한 사람의 몰락이 곧 거대 집단의 몰락으로 이어질만한 파급력을 가진 자의 그것일 때가 아주 꿀맛이라는 말이다.


이모가 주인공이 너무 잘 나서는 안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인공의 욕망은 아래보다는 위로 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위를 향해 탐하는 욕망이 선명하고 강하려면 주인공은 꼬리칸에 있어야 한다.

<설국열차>의 남궁민수(송강호 분)가 꼬리칸에 사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스토리라는 것이 뭔지 그 본질을 생각하면 할수록

'니 인생의 주인공은 너다'라는

어른들의 덕담이 정나미가 떨어진다.


꼬리칸에 살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욕심내고 살고 싶지도 않고

시련은 근처에도 가기싫다.

선천적 결함은 이미 셋팅되었으니 거부 불능이니...뭐....


이모가 덕담을 하겠다.

'우리 모두 최소한 오늘 하루만이라도조연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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