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루아 Sep 19. 2023

감옥

3000자단편



   앞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어딜까?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어제저녁 차를 타고 동생을 만나러 갔고 그녀의 집 주차장에 주차한 것까지는 확실히 기억났다. 그리고…. 그다음을 생각하려 할 때 갑자기 깨질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짚으려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팔은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올려지지 않았다. 양팔 바로 옆에 벽이 있는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역시나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나의 몸은 딱 맞는 통 같은 곳에 갇힌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나는 내가 있음을 밖에서 알아챌 수 있도록 온몸을 흔들며 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밖에는 아무도 없는 걸까?’


 처음의 의문으로 되돌아왔다. 여기는 어딜까? 어디서부터 기억이 끊긴 거지?


동생의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잠깐 통화를 했던 것 같다. 누구한테 전화했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매우 화를 내고 있었다. 블루투스와 연결된 스피커폰에 대고 소리를 지르다 거칠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게 기억났다. 그리고 차 밖으로 나오려고 문을 열었다. 꽤 큰 SUV를 최근에 구매해서 내릴 때마다 뛰어내리듯 내려야 했다. 장면을 떠올리자 또다시 두통이 밀려왔다. 머릿속에 펌프로 공기를 너무 많이 넣어서 머리가 폭발하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안돼!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문득 고통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부터 시작해서 안으로 밀려들다 더 이상 공간이 없어 머리가 폭발하는 듯한 이 아픔. 분명 처음 느끼는 고통이 아니었다. 차 문을 닫고 뒤돌아서는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뒷머리를 강하게 가격했다. 퍽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래! 거기까지였다 나의 기억은!

  잊고 있던 기억을 모두 떠올리고, 누군가에게 공격당해 이곳에 갇힌 게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도대체 누가 나를? 아니 너무 많아서 누군지 모르겠는 건가? 원한 살 일이 없이 살았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삶이었다. 원하는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누구든 짓밟았고, 갖고 싶은 것은 빼앗아서라도 갖고야 말았다.


   ‘그래, 천천히 한 명씩 생각해 보자. 누가 날 가둔 건지 알아내면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가장 가까운 기억부터 떠올려 보았다.

   여동생. 그녀는 나에게 꽤 큰 빛이 있다. 제부가 쓰러지고,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게 살던 그녀는 야금야금 내게 돈을 빌렸다. 나이 차가 꽤 나서 어릴 적부터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자매라 야박하게 굴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는지 그녀는 종종 이자를 빼먹었다. 나는 몇 년간 그것을 모두 기록해 그녀를 고소했다. 그날은 원금을 갚지 않으면 그녀가 조카들과 살고 있는 집을 경매로 넘기겠다고 통보하러 간 날이었다. 그녀는 내게 울면서 애원하다, 나중엔 악다구니했다. 하지만 태생이 여리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죽이는 성정이었다.

  독한 성격이었으면 반 시체나 다름없는 제부를 그날까지 끼고 간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기준에서 동생은 천하의 멍청한 년이었다.


  ‘그래 걔가 이런 대범한 짓을 저지를 리는 없어. 그럼, 그놈인가?‘


   내가 운영하는 사업체 중 한 개에서 나 대신 더러운 일들을 처리해 주며 충성하는 부장 놈이랑 술 한잔을 하다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게 삼 년 쯤 전이었다. 군소리 없이 시키는 일을 잘 처리하고, 밤일도 꽤 하길래 종종 살을 섞으며 지냈다. 하루는   이혼했다고 죽을상을 하길래 마침 필요할 때 부르는 게 귀찮아진 참이라 내 집에서 지내게 했더니 남편 행세를 하려 들었다.    

  내 위세를 이용해 뒷돈을 챙기는 것도 모자라 젊은 직원이랑 내가 준 차에서 놀아나길래 맨몸으로 내쫓아 버렸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쫓겨난 그놈은 울고불고 매달렸다. 애원이 통하지 않자, 날 위협하려 하길래 탈세 혐의로 경찰서에 처넣어버렸다.


 ‘그래, 그놈 날 가만두지 않겠다고 복수한다고 떠들어댔지? 하지만 그놈은 이혼당하고 전 재산을 날린 데다, 시기상 아직 감방에서 나오지도 못했을 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은 떨어졌고 피곤함이 밀려왔다. 나는 가물가물 몰려오는 잠에 빠져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자다 깨는 사이사이에 몇몇 사람들을 더 떠올려 보았다. 월세를 밀려서 엄동설한에 애를 안고 쫓겨났던 여자. 특허를 대신 신청해 준다는 내 말에 속아 아이디어도 사업체도 내게 빼앗기고 자살한 남자의 가족들…. 하지만 모두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위인은 못 되는 사람들이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지만, 그들은 내게 정말 지렁이나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들이 나를 공격하고 가두어 둔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꼬리를 무는 생각에 빠져있다가 까무룩 잠이 들려는 순간이었다. 문득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오늘은 며칠일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몇 번이나 잠이 들었다 깬 걸로 보아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배고픔이나 요의를 느낀 적이 없다. 이상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온몸을 흔들며 몸이 통에 부딪히게 했다. 순간 나는 내 비명이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귀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내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울부짖었다.


   소리 나지 않는, 들리지 않는 나의 울부짖음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저 환자 또 우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나 몰라. 보기만 해도 안쓰럽네.”

  옆 침대에서 남편 밥을 챙겨주던 여자가 하는 말에 건너편에 누운 남자가 말과 기침을 같이 토해내듯 대답했다.


   “아 몸은 못 움직여도 의식이 없는 건 아니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 죽는 게 낫지. 나이도 얼마 안 된 거 같구먼.”

   남자는 말을 마치고 혀를 끌끌 찼다.


   “불쌍하긴요. 저 여자 동생이 와서 하는 말 못 들었어요? 세상 못돼 먹은 년이던데. 벌 받은 거지. 그래도 언니라고 가끔 들여다보는 그 동생이 보살이던데요. 뭘. 온갖 더러운 짓 하며 살 때는 저렇게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겠죠?”


   침대에 누워 링거줄이랑 소변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누워있는 여자를 두고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던 사람들은 간호사가 들어오자 조용해졌다. 간호사는 기계적으로 여자의 링거 속도를 체크하고, 소변줄에 매달린 주머니를 갈고, 바이탈을 체크하고 다시 방을 나갔다. 침대에 누운 여자의 눈에서는 또다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주와 떡볶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