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넬의 서재 Oct 24. 2020

글쓰기는 섹스다.

욕망에 충실하면 글도 잘 쓰나요?


글을 쓰는 행위는 작가의 욕망표출이다.


대놓고 드러내면 별로 흥분이 안되나 모두가 느끼지만 함부로 입 밖으로 말할 수 없게 써야 섹시한거다. 처음부터 나체로 마주하면 그 흥분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처럼, 살색 속옷을 천천히 벗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진짜 글쓰기다. 어색함 속에서도 참을 수 없는 욕망을 읽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한 번 허투르게 읽어서는 살내음을 맡지 못한다. 몸이 준비되기도 전이라 야릇한 분위기를 탈 수도 없다.


침대에서 자기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듯, 자기도 몰랐던 페르소나를 발견하는게 글쓰기의 희열이다.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어도 짜릿하고, 자기만족을 위한 글쓰기도 꽤나 만족스럽다. 훌륭한 파트너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초대하듯, 글쓰기도 수준 높은 독자와 함께 할 때 독서의 깊이가 달라진다. 내가 대놓고 말하진 못하고 알아줬으면 했던 부분을 알아서 짚어내주는 독자와 가장 깊은 교감이 이루어진다. 함부로 들켜서는 안될 것 같은 마음을 제 3자에게 글 속에서 읽혀버릴 때 온몸이 힘껏 달아오른다.


처음엔 혼자 머릿속에서만 이런 저런 망상을 해본다.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뭔가 남한테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사춘기 청소년의 성적 호기심 같다. 그러나 어느날 머리 한가득 채운 망상을 비워내기 위해 남의 글을 읽고 필사하기 시작하는 것이 독서의 시작이다.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기분을 배출하기 위해 조용히 검색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남의 이야기와 필체를 궁금해하는 것이 글쓰기 입문이다. 무언가 많이 읽고 찾아보게 된다. 대놓고 궁금해하거나 물어볼 수는 없지만, 남몰래 계속 탐닉하는게 글쓰기로의 초대다. 단어 하나에 고심을 하고, 문장배열에서 또 마음이 바뀐다. 자신에게 맞는 체위를 찾듯, 나를 가장 만족시키는 문체를 찾는게 글쓰기 작업이다. 신선함과 자극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는게 글쓰기 과정이다.


하얀 속살을 쓸어내리듯 하얀 종이나 화면에 끊임없이 써내려가는게 글쓰기다. 나를 가장 반응하게 하는 단어와 문장을 찾는다. 내가 어느 부분이 제일 민감한지 처음엔 알 길이 없다. 강약조절도 서툴고, 사건전개도 거의 없다. 그러나 훈련과 훈련을 거듭하며 어느새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들과 문장들을 찾아내며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낀다. 내가 배출하고자 했던 감정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카타르시스고, 오르가즘이다. 나도 모르게 현실과 글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직접 써놓은 글에 취해 같은 글을 계속 읽게 되는 묘한 중독성이다. 현실에서는 숨겨야했던 내 안의 예민함과 감수성을 마침내 마음껏 발산하게 된다.


글쓰기는 글과 작가 사이의 관계쌓기다. 나에게 가장 맞는 글을 찾고, 그 문체에 익숙해졌을 때쯤 이야기가 스스로 쓰여지게끔 써야한다. 속궁합이 잘 맞아야 관계가 오래가듯, 인위적으로 쥐어짜내는 글은 이어질 수가 없다. 내가 리드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타 글 속 인물들이 생명력을 가져야 하고, 사건은 자연스레 펼쳐져야 한다. 한 번 달아오르면 쉽게 자기 몸을 조절할 수 없듯이, 글도 한 번 물꼬가 터지면 우수수 쏟아져나와야 한다. 연필을 오래 붙잡고 있는다고, 화면 앞에 몇 시간 동안 앉아있으며 쓰는 글은 이미 생기와 유동성을 잃은 글이다. 억지로 개연성을 부여하고 짜내어 쓴 글은 여자들이 상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하는 서비스성 오르가즘에 불과하다. 침대에서 상대방과 끊임없는 교류를 하며 맞춰갈 수는 있어도, 모든 것을 계획해놓고 실천하는 건 불가능하다. 가짜 오르가즘은 글과 작가뿐만 아니라 순진한 척 글자 위에서 지켜보던 독자 또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뭔가 관계가 석연찮지 않을수록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해야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가슴이 답답할땐 더 적극적으로 쏟아내야 한다. 대담해져야 한다. 마음 속에 쌓여가는 말은 결국 관계를 망칠 뿐이다. 정제되지 않았더라도, 우선 본능을 따라 솔직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수줍게 시작했어도, 그 속에서 욕망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적나라할수록 자기도 모르게 자신감이 붙는다. 상상력이 과감해지고, 아슬아슬 해지기까지 한다. 숙련될수록 노련해지고 기교 또한 훌륭해진다.


글쓰기는 작가 스스로 창조주가 되는 세계다. 남들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판타지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롤플레이 마스터가 된다. 내가 스타트를 끊어주고, 어느 정도 짜여진 틀에서 인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엿보게 되는 트루먼쇼다. 현실에서는 펼칠 수 없었던 내 안의 조각들을 인물이나 단어 하나하나에 심어주는 작가의 욕망이다. 미처 이루지 못했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기회들이 발아하도록 내버려두는 소우주다. 작가의 글은 작가가 가진 무수한 무의식 속 자아의 조각들이다. 작가 속에 존재하지 않는 생각이나 사유는 결코 그 작가의 글 속에 반영될 수 없다. 그래서 섹스처럼 수줍게 시작했던 글쓰기는 어느새 읽는 이 모두를 다른 차원으로 인도하는 관문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