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작가 Oct 30. 2023

헤어 디자이너에게 사과했다.



‘이번엔 꼭 사과드려야지’


올해 마지막 전시회 준비한다고 지난 몇 달 야근야근야근야근 또 야근에 정신이 없었다.

일에 치어 살다 보니 머리가 삽살개처럼 불어나 미용실 예약을 했다.

'날 말티즈로 만들어주세요!'


4년간 다니던 미용실을 뒤로하고 지금 미용실에 첫 방문을 할 때 디자이너 선생님께

“저는 똑같은 곳만 다닙니다. 이번에 마음에 들면 앞으로 적어도 3년, 매달 찾아뵙겠습니다”라고 한 게 벌써 일 년하고도 반 전이다.


그러다 몇 달 전, 머리를 다듬다가 말실수를 했다.


내 머리스타일은 10년째 똑같다.

윗 뚜껑은 컬이 조금 들어간 펌으로 5대 5 가르마를 하고, 옆과 뒤는 6mm로 짧게 밀어낸 투블럭 스타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디자이너님이 내 옆머리를 짧게 밀어주고 있었는데

내가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윗머리는 그냥 좀 길어도 되는데 옆머리는 조금만 길어지면 밤송이처럼 쭈뼛거려서 싫어요. 이런 건 그냥 집에서 바리캉사서 혼자 밀어버리고 싶어요”



“이 말, 미용사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에요”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아차 싶었다.

유학 시절엔 머리 깎는 비용이 비싸다 보니 남자애들끼린 군대처럼 옆머리 정도는 바리캉을 사서 밀어주곤 했었다. 그래서 그냥 별생각 없이 말했는데 이게 관련 업계 종사자에겐 불편한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하물며 자신이 하는 일에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에겐 더 그럴 건데.


내가 내 전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누가 옆에 슥 와서 "이거 그냥 이렇게, 저렇게 대강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하면 불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중한테 머리 대충 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거랑 염불 그거 그냥 외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거랑은 다른 건데 말이다.


이후 몇 달 동안, 머리 감을 때마다 종종 떠올랐다.


'아 그때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제대로 사과할 걸'


그렇게 내내 벼르고 있다가 오늘 머리 다듬으면서 그때 얘기를 했다.


“그때 제가 말 실수했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디자이너님이 웃으시면서

"그랬었나요? 아니 그리고 그걸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하핳

아니에요 그때도 별생각 없었어요. 뭘 그런 걸 가지고 사과까지 핳핳”


'이런 낯간지러운 사과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라는듯한 표정으로 눈을 피하시면서 오히려 부끄러운듯 발그레 웃으셨다.


죄송해요 제가  야무지고 심성이 곱고 생각이  깊죠?” 하고 서로 웃으며 다른 주제로 수다 떨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 했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혹시 모른다.

후.. 말 조심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파도와 모래가 만나는 부분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