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동을 한 후 3주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다른 회사에 합격하게 되어 이직을 결심했다. 그래서 부서 상사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고 알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퇴사 의지를 밝히려는데, 상사가 다짜고짜 내 언행에 문제가 있단 식으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오늘은 또 뭐로 심기가 불편하실까. 빙빙 돌려 말하는 그의 화술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직급에 성을 붙여 부르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님’자를 붙여 부르라는 말이었다. 할 말을 할 타이밍을 못 잡아 그의 잔소리에 ‘네’로 대응하다가 깜박이를 켜지 않고 훅 들어가버렸다.
“저 이 회사에서 일을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나가려하는지 이유도 묻지 않고 그가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너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먼저 퇴사할 거야. 넌 내가 나간 다음에 나가”
그는 본인이 남겨져 오명을 쓰는 게 싫다고 했다. 이전 직원들에 이어 나까지 퇴사를 하면 자신을 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거라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끝까지 이기적이었다.
상사는 마지막으로 내게 하고픈 말은 해야겠다 싶었는지 나를 향해 욕을 쏟아붙기 시작했다. 대충 기억을 해보자면 성실하지 않고, 당돌하고, 어른 위할 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일까. 섬뜩했다. 만약 그런 이유로 회사에 버림받아야 한다면 그동안 내가 꾼 악몽들은 다 무엇이지? 병원에서 받은 우울증 판정과 거무튀튀하게 변한 낯빛은 다 뭐지?
그의 미간에 내 천(川)자가 새겨졌다. 그가 그동안 나한테 씌워온 프레임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아마 가상의 아바타를 만들어 그게 실제 나인 것처럼 시나리오를 쓰고 미워하고 무시해온 모양이다.
“무서워요 부장,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 저 그냥 사무실로 갈게요”
내가 옆에 사람들이 있다는 의식도 못하고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그리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노트북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꿈일 거야!
그를 뿌리치고 망설임 없이 카페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