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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Dec 14. 2022

'커튼콜' 황우슬혜의 2만 시간

TV 캐릭터 박물관④ 황우슬혜 아닌 현지원을 상상할 수 있을까 

“너네들만 잘났냐! 재수없어!”     


파티장에서 고고한 척 영어로만 대화하는 친구들 앞에 주눅들어있던 지원은 “화를 안고 살면 병난다”는 윤희의 말에 이렇게 소리친다.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울분을 토해내는 듯한 외침에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이상하다 분명, 짠한 장면인데 왠 코미디의 향기가... 아하! 지원 역을 맡은 황우슬혜 덕분이다.


KBS2TV 월화드라마 <커튼콜> 배우들의 인연은 실타래처럼 단단히 엮여있다. 하지원은 권상우, 성동일과 각각 영화 <신부수업>과 <담보>에서 호흡을 맞춘 사이다. 성동일과 권상우는 <탐정 더 비기닝> <탐정 리턴즈>에서 콤비로 활약한데 이어 웨이브 드라마 <위기의 X>서도 만났다.      


이런 연결 고리 속 눈에 띄는 캐스팅이 바로 황우슬혜다. 그는 영화 <히트맨>에서 권상우(준 역)의 아내 미나로 분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커튼콜>에선 비교적 작은 역할을 맡았다. 자금순(고두심 분)의 손주며느리이자 박세준(지승현 분)의 아내. 현지원은 한 회차에 몇 씬 안나오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한다. 나는 현지원이 나오는 순간을 기다리며 <커튼콜>을 본다.                 



황우슬혜는 노력형 배우다. <히트맨> 개봉 당시 홍보 차 출연한 MBC <라디오스타>에 따르면 고급 자동차를 타는 씬을 위해 친구에게 차를 빌려 타고 내리는 것만 무한반복할 만큼 쓸데없는 연습(by 정준호)을 한다. 자신의 부정확한 발음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는데 방송 특성상 에피소드가 희화화됐지만, 대화 속에서 황우슬혜가 발음 연습에 힘쓰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었다.      


그를 움직이는 건 2만 시간의 법칙이다. 실제로 <라디오스타> 방송에서 “연기연습을 14년 동안 꾸준히 하고 있다”며 “현재 1만 시간이상 연기연습을 해왔는데 2만 시간을 채우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의 주장을 뛰어넘는 이론이다.      



1979년생인 황우슬혜는 2008년 영화 <미쓰홍당무>로 데뷔해 내년이면 16년차 배우가 된다. 제법 필모그래피를 쌓은 40대 배우, 자칭 다작배우가 작품 없을 땐 연기 수업을 받으면서 캐릭터 연구를 한다니! 그를 성실하게 만든 채찍은 “연기 연습 좀 하고 나와라”라는 누리꾼의 댓글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배우로서 인정 받고 싶은 욕심일 것이다.      


tvN <사랑의 불시착> 재벌가 며느리 도혜지, TV조선 <엉클> 로얄 맘블리 클럽 대표 미녀 김유라, KBS2TV <미남당> 호텔 대표 이민경 등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이미지는 모두 세련미 철철 넘치는 캐릭터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코믹하고 허술한 면이 있다. <커튼콜> 현지원 역시 ‘우아하고 싶은’ 평범한 여성을 대변한다. 대한민국에서 예쁜 배우는 많지만 예쁜 얼굴로 백치미 가득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는 별로 없다. 황우슬혜는 그 부분에서 독보적이다.      


그리고 마침내 단 한 씬으로도 존재감을 뿜어내는 지금의 현지원을 만났다. 그의 진가는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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