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역에서 샛강역으로 가던 도중이었다. 잊을 만 하면 한번씩 찾아오는 불청객. 안돼! 지금은 출근 중이란 말이야!
지하철 안에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처럼 갑갑하고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스꺼웠다. 숨도 크게 쉬어보고 침도 삼켜보고 머릿속에 음악 멜로디도 떠올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손잡이를 꽉 잡고 기를 쓰다가 결국 봉은사역을 앞두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핑-하고 돌면서 어지러워서 잠시 절 하는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사람이 그렇게 많았지만 아무도 나를 신경쓰진 않는 듯 했다. “아가씨 괜찮아요?”라고 물어본다거나 자리를 양보해준다거나 초콜릿 하나 건네는 사람 없었다. 내가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봉은사역에서 후다닥 내려 바로 벤치에 몸을 앉혔다. 하필이면 3명이 따로 앉을 수 있도록 가운데 쇠가 있는 벤치여서 누울 수는 없었다.
미주신경성 실신.
20대 중반 대학교 등교를 할 때 처음 만난 녀석이다. 그때는 원인을 몰랐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몇 년이 지나 연예계 스타들의 공황장애 고백 바람이 이어질 땐 나도 공황인가 하고 생각했다. 서른이 넘은 작년에도 몇 개월을 주기로 계속 되길래 병원을 여러곳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알아낸 내 병의 이름. 의사의 말에 따르면 치료법은 없다고 한다. 그냥 물 있는 곳, 옆에 낭떠러지가 있는 곳 등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왠만하면 당이 떨어지지 않게 사탕, 캬라멜 따위를 늘 들고 다니라고도 했다. 그래서 출근길 내 가방 안엔 생수를 비롯해 군것질이 몇 개씩 들어있다. 이날도 가방에 몽쉘이 하나 있었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현기증에 정신이 몽롱해져 그걸 꺼내 먹을 생각 따윈 하지 못했다. 마취총 맞은 동물처럼 몸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차가운 벽에 볼을 기댔더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다시 열차를 타고 회사로 가야할까, 아니면 돌아서 집에 갈까. 찰나의 순간 고민했는데 내 답은 ‘그 어느쪽으로도 도저히 갈 수 없다’ 였다. 내가 이러다가는 기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생존본능이 발동했다. ‘도움을 요청하자!’ 눈알을 굴렸는데 그 어디에도 비상벨이 안보였다. 모든 힘을 쥐어짜내 휴대폰으로 ‘9호선 지하철’을 검색했다. ‘고객센터’를 누르고 긴 안내방송을 기다린 끝에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전쟁 중 낙오된 병사가 간만에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분이 이런 걸까.
전화기를 붙들고 속사포랩처럼 할말을 토해냈다.
“여기 ~역 ~방향 ~~번 플랫폼 앞인데요. 제가 너무 어지러워서 아무것도 못하겠으니 누가 좀 오셔서 저좀 데리고 가주세요.”
체감상 1분 만에 직원 세 명이 내가 누워있는 벤치 앞에 도착했다.
“괜찮으세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 두 명이 내 양 옆에 팔짱을 끼었다. 그들은 지하철 수유실에 나를 데려다줬다. 예전에도 같은 증상이 있었을 때 와본 곳이라 어색하진 않았다. 소파에 기대 누워 직원이 내 카드로 사다준 ‘포카리스웨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찜질방의 얼음방보다 차가운 에어컨 공기가 수유실 안을 가득 메웠고, 그곳에 누운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일단 살았다는 안도감에 온기를 느꼈다.
그리고 좀 웃음도 났다. 푸하하... 나 또 이러고 있네? 조금 진정이 된 후 수유실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출근도 못했고 근무도 포기했다. 몸살기운과 함께 침대에 누워 다음날 아침까지 잠만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