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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필 Aug 13. 2023

수분이 많은 사람

아내의 눈물

여자의 눈물은 묘한 힘이 있다. 감정이 매우 예민해지거나 냉정해지는 상황에서 나오는 여자의 눈물은 천천히 쌓아 올린 탑을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뜨리는 것 같이 상황과 판단을 무너 뜨린다. 그런 비논리적이며 비합리적인 상황이 싫은 남자들도 많다.

  아내도 눈물이 많다. 영화에서 어떤 감동적인 장면이 나와도 울고, 책에 어느 부분이 슬프면 울고, 몸이 매우 힘들 때도 울고, 특히나 가끔씩 내가 아내에게 화가 난 감정을 표출하려고 할 때 눈물을 쏟는다. 어느 샘에서 이렇게 퍼내고 퍼내고 눈물이 솟구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금방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방울을 똑똑 떨어 뜨린다. 아주 신묘한 재주다.

  그렇지만 아내의 눈물이 싫지는 않다. 마르지 않는 눈물샘만큼이나 촉촉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나는 한해 두해 지날 때마다 좀 더 건조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감정이 마르고 기력도 몸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만 운용하는 합리적인 운영을 하기로 몸이 나 모르는 사이에 타협한 것 같다. 그래서 동요도 적지만 아주 작은 불씨에도 금방 불이 번지기도 한다.

  물은 다양하게 변화한다. 온도에 따라 딱딱해지기도 하고 펄펄 끓다가 이내 날아가버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유연하고 풍성하다. 나는 이런 수분이 많은 아내가 좋다. 많은 상황에서 나보다 유연하고 풍성하게 대처하며 힘들 때는 몸이 꽁꽁 굳어 녹이는 내 온기를 필요로 하는 것까지 좋다. 그런 감정의 변화들이 불안정한 것 같지만 그것은 물의 자연스러운 변화이다. 물은 자체로 완벽하다.

  이미 푸석해지기 시작한 곳에 수분은 곤란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르고 있었을 뿐 우리는 대체로 맑고 생기로 가득했다. 나는 그런 아내의 수분에 감사하고 내 메마름을 강요하지 않아야겠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갈증을 느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내 덕분에 조금 더 촉촉해지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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