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따윈 관심 없는 우리의 임신 이야기
출산율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국가의 존속이며 경제적 부담이며 하는 이야기들로 사람들은 먼 미래에 대해서 큰 위기를 겪게 될 거라며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일개의 한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국가의 입장을 생각하기도 전에 너무나 여유가 없어진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지금 남의 걱정이나 할 여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내가 임신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었다. 나도 벅찬 감동이 들었다. 종종 '출산율 0.65 시대에 하나만 낳아도 애국자'라는 이야기로 임신 자체를 귀한 애국 행위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는 썩 기분 좋게 들리진 않았다. 왜냐면 나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임신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 또한 아이를 갖는 것에 있어서 그리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찾아올 우리 인생의 변화, 당장의 소득과 앞으로의 필요한 경제적 규모에 대해 생각하면서 답답해하고 불안해하기도 했다. 또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의 환경, 경제 등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우리는 그런 대화를 나눌 때마다 많은 경우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는 결론으로 도달하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그것은 우리 가정이 안온한 환경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으리라는 우리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다짐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조금씩 닮은 아이를 갖고 사랑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답고, 조금은 더 윤택한 삶이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이제 아이를 3명에서 2명만 낳아도 다자녀로 인정하여 혜택을 주는 것으로 정책이 바뀐다고 했다. 0.65 시대에 1을 낳으면 그것만으로 이미 다자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이 세상은 아이를 키우기에 녹록지 않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맞벌이하는 동안 아이들은 학원을 뺑뺑이 돌거나 조부모 또는 모르는 사람들 손에서 크는 것을 으레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생각하는 지금. 나는 그러한 상황들과 생각들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고 불편하다. 아이가 온전히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성장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공상과학 소설처럼 허무맹랑하기만 한 이야기일까?
우리 가족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듯 세상이 '당연시'하는 통념들에 맞서며 살아볼 생각이다. 세상의 통념과 맞서며 사는 건 외롭고도 괴롭다. 하지만 그 반대로 나다움을 거스르며 사는 것은 더한 고통이라는 것을 알기에 최악보단 차악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많은 축하를 받아 마땅한 이 소중한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까지 우리는 우리를 향한 수많은 잣대들과 참견들과 조언들에 맞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잘 이겨내는 근성을 아이가 물려받기를 원한다. 어쩌면 그것이 이 강퍅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우리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일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