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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루 Feb 22. 2018

오지랍이 넓은 사람이 되자

여행자와 여행자, 그리고 현지인

한국, 러시아,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모두 모여


우리는 블린으로 풍족하게 배를 채운 후, 가게를 나서자 마자 그녀들을 만났어. 케이트와 마리나였지. 나이차가 꽤 나 보였지만 친구라고 서로를 소개하더라. 우리를 보며 깜짝 놀라던 그들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더라고. 마침 러시아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우리는 흔쾌히 응했지. 케이트는 그대로 우리를 지나쳐 갈 수도 있었을 거야. 그런데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더라고. 우리가 입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동안 또다른 여행객이 우릴 향해 왔어. 이번엔 이탈리아 인이었지.





그는 뭘 궁금해 했게? 바로 볼끼였어. 내가 머리에 두르고 있는, 털이 달린 머리띠 같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지. 이탈리아에서 서비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자코보는 꽤 여행을 즐기는데다 멋진 풍경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야. 나는 그의 아이폰 메모장에 'bolkki'라고 정확하게 적어주었지. 이 후,  러시아 여행을 한참 하고 있을 때, 그에게서 메세지가 왔어. 중국에 가서 bolkki를 구입하려고 애썼는데 찾을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지! 당연히 못 찾지. 이건 한국에만 있는 것이니까! 그러고 보니 그에게 볼끼를 구매할 수 있는 연락처를 빨리 주어야겠어. 많이 기다렸겠다.





뭔가 정신이 없었어. 내 한복이 뭔지 궁금해 하고, 우리가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하고, 내가 머리에 쓴것과 두른것들을 모두 궁금해했어. 신 문물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 그러니까, 날씨가 정말 좋았던 블라디보스톡 거리에서 우리는 궁금증이라는 주제로 함께 모였던 거야. 그들은 우리에게 잔뜩 질문세례를 퍼부었고, 우리는 답해주기 바빴거든.











오지랍이 넓은 사람이 되자

케이트와 마리나는 오지랍이 넓은 사람이라고 확신해. 특히 케이트 말이야. 길거리에서 한참을 사진찍던 그녀들은 우리를 바로 앞 카페로 이끌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여행자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더라고. 어쨌든 우리는 점심을 먹자마자 러시아 친구들을 만나 티타임을 같이 했지. 일단 케이트는 우리들이 신기했고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 했나봐. 대화는 두세시간동안 이어졌어. 통상적으로 각자 뭘하는 사람인지, 한국과 러시아의 전통옷 이야기가 메인 주제였어. 러시아에 여행온 이유와 한복입고 여행하는 이유같은 것들도 빼놓을 수 없었지. 결국엔 서로가 좋아하는 영화를 얘기하고 취향에 대해서도 얘기했지. 케이트가 영어를 잘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는 정말 오지랍이 넓은 사람인거야. 나도 그녀를 보며 마음먹었어. 한국에서 외국인 여행객을 보면 꼭 오지랍을 부리기로. 사실 거절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분명 내가 한국인이라서 도움 줄 수 있는 것이 분명 있을 테니까.






평화를 찾아서

여행을 하다보면 어떻게 해야 낯선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어. 우선 눈을 마주쳐. 그리고 인사해. 그 다음에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해. 그리곤 너의 이름을 먼저 알려주는 거야. 그럼 끝이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지 말지는 그 순간이 결정해. 나의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아주 티끌같은 서로간의 관심이지. 영어를 못한다고 실망하지는 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관심'은 눈빛만 봐도 통하기 마련이거든. 나를 보면서 위안을 삼길 바라. 

케이트는 솔직했고 우리들에게 관심이 있었어. 친구와 약속이 있기 때문에 곧 나가봐야 한다고 했지. 그 말을 듣기 전에 그녀는 내게light house를 강력하게 추천했어. 그게 여행자들이 말하는 마약 등대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블라디보스톡의 여러 지역을 얘기해주는 그녀를 보고 함께 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을 전했지. 짧은 영어였지만 통하기를 바랐어. 예상대로 조금 고민을 하더군. 그러더니 만나기로 한 친구-옥사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오라고 하는거야! 단짝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는 소중한 시간일지도 모를, 다시없을 오후를 처음 만난 동양 여행자들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거지! 정말 대단하지 않아? 우리는 바로 3시간 전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고. 그냥 수평선을 그리며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다. 나는 이런 것이 바로 운명이라고 생각해.






버스를 타고 종점에 도착해 케이트가 말했어. 

여기에 오면 평화로움이 느껴져,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야.

눈 덮인 강-바다-는 온통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어. 그냥 평지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야. 겨울보다 여름에 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곳은 꽁꽁 얼어있었어.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리 춥지는 않았어. 다행히 낮이었기 때문이지. 나는 케이트가 말한 '평화'를 찾으려 애썼어. 길을 걸어내려갈 수록, 더 넓은 하얀 광경이 드러나면서 케이트의 얼굴도 빛나는 것처럼 보였어. 케이트는 우리에게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소개하고 있는 중이었지.






 with 뀨, 연, 케이트, 그리고 옥사나

그리고 mano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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