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을 덮기까지
내가 찾는 정신과의 의사 선생님은 과거에 너무 묶여있지 말 것을, 현재에 온전히 머물 것을 주기적으로 강조했다. 과거는 어차피 나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영역이며, 나는 죽음 생각과 죽음을 막는 생각, 그리고 과거에 할애 중인 뇌의 용량을 빼서 그것들이 현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남의 탓을 하고 싶었던 걸까, 매번 '과거에 너무 메이지 말아야죠.', '그 흐름이랑 싸워서 다시 현재로 와야죠.'라고 말하는 선생님이 쉽게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맞는 말을 하고 있었고, 내 말에 공감하는 능력도 훌륭했지만 지만 가끔은 교과서가 사람이 되어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 말이 맞아요, 우리는 상처 줘서는 안 되고, 훔쳐서도 안 되죠. 그런데 그런 일들은 매 시간 일어나고 있잖아요. 나는 늘 그랬듯 속으로 생각만 했다. 안 그래도 우울증 때문에 신파에 가까워진 인생이 더 뻔해지는 모습을 보는 건 사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생이 맞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화를 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건 내 문제였다.
인생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도, 옳은 말이 도움이 되지 않은 것도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저 '일반적인 과거 생각'과 '지양해야 할 과거 생각'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내 처지가 피곤했다. 어디까지가 내 성격이고 또 어디까지가 걱정해야 할 좋지 않은 버릇인지. 나를 뿌리부터 검열하는 순간이 종종 찾아왔다. 나의 일부를 과거로 끌고 가는 향기며 소리는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고, 그 후로는 '그랬었지.', '아니, 근데 왜 그랬지?', '그러지 않는 게 더 좋았을 텐데.', '잠깐, 나 이거 걱정해야 하나?', '너무 과거 생각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근데 이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등등. 생각의 연속이었다. 내게는 아직 차오르지 않은 과거의 흔적들이 많이 있었다. 시간이 알아서 그것들을 땜질해줄 거라 기대한 내가 우울증에게 최초의 발단을 제공했던 것일까, 제 손으로 정리해 두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던 만큼 어려서부터 '멍 때리는' 일이 잦았다. 한강 멍 때리기 대회가 발족했을 때 '저것은 나를 위한 대회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일부분이 이 순간을 떠나 과거며 미래의 몇몇 지점을 표류한다는 건 어려서부터 당연한 일이었다. 상처가 되는 순간에는 차라리 이런 식으로 지금을 떠나버리는 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지금에서 이탈하면 상처 받았다는 티를 내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런 습관이 하나둘 쌓이면서 나를 침식할 수도 있다는 걸 의식할 만큼 다차원적으로 사고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빈 공간이 어디까지 담아낼 수 있는지는, 뭔가를 들여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었던가 보다. 눈 깜짝할 사이 램 여유 공간을 잡아먹는 브라우저처럼, 과거를 표류하는 나의 양은 점점 늘어났다. 그것들은 단지 표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뭔가를 물고 현재로 돌아오곤 했다. 내 안에 발 디딜 공간만 겨우 남았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이미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과거의 부속물이나 상처의 조각이 나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감정과 감정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연료는 점점 나의 밖으로 밀려났다. 의사 선생의 한없이 교과서적인 의견이 다시 귓전에 울리기 시작한 건 투약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지금이, 내 조각을 과거로 흘려보낼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정리되고 나니 내 조종간이 있었던 자리도 다시 드러났다.
누군가가 말했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하지만 매번 밟힐 때마다 꿈틀 하면 지렁이밖에 안 된다고. 당시의 나는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속담에 기초한 이 지렁이론도, 의사 양반의 교과서적 충고도 결국 요점은 '매일 일어나는 일을 선택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 일에 대한 반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는 듯하다. 휩쓸릴 것인지, 아니면 통제할 것인지 말이다. 나는 이런 정신론을 꾸준히 싫어해 왔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정신론이 찌르고 들어갈 수 없는 상태라는 게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료가 마무리되면서 내게도 통제 가능한 단계가 왔다. 1년 남짓 되는 치료에 들인 돈과 시간은 분명 적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병원을 찾았으니까. 사실상 '가느냐 이대로 죽느냐'의 선택이었으니까. 치료 끝에 남은 건 이제 완전히 덮인 몇 권의 책으로 남은 과거인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