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 번째

중간이 없었는데요 이제 있습니다

by 체리

약을 끊은 후의 소화불량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하지만 내시경 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대량의 액상 소화제를 사다 놓았다. 올 테면 와보라고 소화불량! 네놈을 쓰러트릴 소화제는 넘쳐나니까! 꿈도 여전하다. 이상할 만큼 선명하며 피곤할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하지만 좋아질 거라 믿는다. 안 좋아지면 그때 가서 생각할 것이다. 사실 이 사고의 흐름도 우울증 치료의 효과를 증명한다. 예전 같으면 소화불량이 지속된다-> 역시 죽는 게 답이니 재료부터 사야겠군-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지금 복약 중단 하이(High)를 겪고 있다. 이런 용어 없다. 그냥 지어냈다. 더 일찍 일어나고, 뭐든 열심히 하고 있는데 심지어 운동까지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운동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으니 만큼 이것 역시 큰 발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운동을 하는 동안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트레이너와의 어색한 시간이 정말 싫기 때문에 집에서 하고 있지만 운동을 하면서 내 몸이 얼마나 쇠약해졌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오늘 50분 정도 운동을 한 후로는 근육통이 생겨 이상한 폼으로 걸어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2kg짜리 아령을 들었을 뿐인데. 발목 운동은 또 어떻고. 운동하는 내내 발목에 입이 생겨 비명을 질러댈 것 같았다. 유산소 운동은 하지도 않았는데 숨이 찼다. 와, 위장만 할머니인 줄 알았더니 그냥 신체 나이가 할머니였구나 생각하니 웃겼다. 웃을 일이 아닐 텐데.. 퇴사한 후에는 보건소에 가서 인바디를 받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검사하지 않아도 결과를 알 것 같다.


우울증에 한번 놀라 본 후로는 우울증 비슷한 잠깐의 슬픔에도 흠칫 놀라며 오두방정을 떨곤 하는데 요즘의 이 과열된 열정 또한, 조금은 나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내가 중간이라곤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상기하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이것도 일종의 강박인가, 나는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거대한 목표들을 사랑했고, 그것을 향해 달렸지만 원체 내구도가 삶은 메추리알 껍질 뺨치기 때문에 곧 몸이 축나 앓아눕곤 했다. 이 앓아눕는 기간은 매번 달랐지만 앓아누운 후에는 꼭 미력한 기력이나마 보충하기 위해 빈둥대는 기간이 따라붙었다. 그러니 내 인생은 바짝 열심히 하다가-앓아눕고-비교적 아무것도 안 하다가-다시 바짝 열심히 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늘 혀를 차며 그럴 바엔 중간 정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여러 모로 나을 거라 충고했지만 27년 동안 꾸준히 저 비극의 고리에 갇혀있으니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이 난다. 그래도 요즘은 아플 기미가 보이면 쉬어주는 정도로 완화되었다. 나이라는 변수가 추가되면서 내구도가 더 약해져 결과적으로는 변한 게 많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왠지 모르게 중간은 불안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만화를 돌려 읽는 한 학기를 보내거나 지하철 이동하는 시간에도 수능 지문을 외우는 한 학기를 보내거나, 둘 중 하나였던 극단적인 고등학생은 나이를 먹어 훌륭한 극단적 어른이 되었다.

그 불안 하나가 내 노력의 전부는 아니지만, 남들이 걱정할 수준까지 목표에 매달리는 동안 내게는 '나는 특별한 구석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말아야 해'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요령이라곤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중간에 앓아눕는 바람에 결과는 중간 정도의 정열로 매달린 것과 다를 바 없었던 적도 있는데 왜 고쳐지지 않았을까. 하여간 불안은 많은 것을 망쳐놓는다. 아마 앞으로도 망쳐놓을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신은 얄궂게도 내게 삶은 메추리알 껍질 같은 건강과 고집처럼 생긴 근성을 같이 줬기 때문이다. 나의 모순적인 성격이 신도 일하기 싫을 때가 있다는 지극히 인간적 면모를 조명한다.


중간은 왠지 모르게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강도였다. 나는 양 끝에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할 때면 거기에 온 신경에 몰려 성질이 무척 나빠졌고, 나의 괜찮은 점이라고는 걱정 없어 보이는 성격 정도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여기에 위기감을 느꼈다. 열심히 하던 시기에는 '내가 천재였더라면 이런 짓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쉿 소리를 내고 다녔고, 좋게 대답할 수 있는 일에도 쏘아붙이듯 답변했다. 나는 열심히 해서 얻어지는 성취는 좋았지만 열심히 할 때의 성질머리에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기에 아무 압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성질이 나빠도 열심히 할 때의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최악은 단연코 중간이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 때. 그 '적당히'가 뭔지 도저히 모르겠기 때문에 중간이라기보다는 중간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기간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맙소사 위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내 유년기가 너무 끔찍해 보인다. 늘 나를 왜곡해서 바라보려는 노력을 했었다. 우리가 절대 손대선 안될 통장 속의 저금액 40만 원을 0원으로 인식하듯이, 뜨겁다 못해 델 정도의 헌신이 아니면 노력 취급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게 옳은 것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좋은 게 뭔가. 몸은 (더)약해졌지만 요령과 중간이 생겨났다. 뜨겁지 않아도 귀하다. 노력은 거기에 있다.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