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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Nov 17. 2020

11. 할머니.

걸려온 할머니의 전화. 

할머니가 전화를 했다. 받고 싶지 않았는데. 저번에도 연락을 받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서 미안했다. 전화기를 귀에 대니 목소리가 들렸다. 울먹이시는 것인지, 건조한 날씨에 목이 쉬었는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씀을 하신다. '여보세요?'. 사투리 억양이 강하게 묻어있는 목소리. 동생과 나의 앨범을 보다가 연락을 주셨다고 한다. 매일 저녁이면 앨범을 본다는 말씀에 마음이 울컥한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느낌. 

아빠도 우리 집에 못 오게 하고, 나도 집에 못 오게 한다고 내심 서운한 기색이시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의 손자들을 왜 만날 수 없는지. 이혼은 했지만, 그래도 내 손자들인데 말이다. 어디 저 멀리 타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부산 바닥에 살면서 찾아가지도 말라 하니 얼마나 그 속이 상할까. 이미 이혼한 사이에 괜히 아빠와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찾아갔다가 이제 이 손자와 전화도 하지 못할 것이 두려워 찾아 오시지 못한다. 그 아쉬움을 매일 저녁 앨범 속의 손자들을 보며 달래고 있는 할머니. 기초수급생활자로 지정이 되어서 국가로부터 쌀과 집이 나온다며 본인은 괜찮으시다며 연신 집 자랑을 하신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 좋다고. 이제 도시가스도 들어오고 깨끗하다고. 자신의 처지를 수용하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한 분. 그 유일한 욕심이 손자들을 보는 일인데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으니. 하늘도 참 너무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 

2주 전쯤에 아빠에게도 전화가 왔다. 몇 번은 타이밍이 안 맞아서, 몇 번은 받고 싶지 않아서 부재중 전화로 남겨두었다.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받을까 무서웠다. 아빠가 죽거나 위독해서 병원에서 연락을 했다거나, 아빠의 빚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일 것 같아서. 아빠가 받아도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일이 잘 풀리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라는 말을 하겠지만. 그 말은 20년 가까이 듣고 있다. 당신의 탓은 아니겠지만, 그 말을 20년째 듣다 보니 지긋지긋한 것도 사실이다. 도움은 안 바라니 내 삶에 더 큰 짐이나 얹어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아버지가 살아서 연락을 주는 것에 감사해야겠지. 할머니가 무사히 살아서 내 안부를 걱정해 주는 것을 감사해야겠지. 감사한 마음을 내어도 철컹 내려앉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내 나이가 28살인데, 이제 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위태로워 보이는 아버지의 삶이 걱정이고, 내 존재가 유일한 삶의 낙이실 할머니에게도 미안함뿐이다. 객관적일 수도, 쿨할 수도 없는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렇게 글이라도 몇 자 적어내려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한 2년 전의 나는 부재중 전화 한 통에 무너져버렸으니까. 그때 무너졌던 덕에 이제는 무너지고 다시 추스르는 법을 배웠는지도. 

아버지도. 할머니도. 부디 건강하시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마음을 내어서 전화를 받고, 무성의한 대답을 하는 정도인 것 같으니.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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