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사고와 준법의 댓가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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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의 만화 '송곳'에서 마트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자 사측에서 '준법 탄압'을 시작한다. 사측도 이윤을 위해서 암묵적으로 방조했던 사소한 룰들을 현장에 직접 적용시키기 시작한다. 분 단위로 지각을 체크하고, 식품을 만들 때 위생마스크를 미착용했다는 이유로 벌점을 매긴다. 현장에 들이닥친 '준법 탄압'은 조합원들이 온 몸으로 탄압을 공포를 느끼는 계기가 된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일하는 가게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가게에 노동조합이 생긴 것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 일이라면 내 브런치가 아니라 부산일보나 한겨레신문 기사에 기사로 났을 것이다. 차라리 노동조합이 생겨서 탄압을 위해 그러는 것이라면 대응이라도 하고 싸움이라도 해보겠지만 이는 형태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이는 '알바'라고 불리는 나의 존재가 너무 무기력해서 화풀이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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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잡 뛰는 가게에서 일을 마치고 과한 식사를 먹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주말에 일하는 가게 단톡방에 장문의 카톡이 와있었다. 점장이 보낸 것이었고,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게는 직영점이고 교육용 가게이다. 현재 재고가 잘 맞지 않는다. 자기는 이런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 손님이 문에 손이 끼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와 재고 관계로 본사직원들이 계속해서 가게에 방문할 예정이다. 진열, 검수, 청결 꼭 지켜야한다. 특히 주말은 점장이 출근하지 않는 관계로 느슨한 것 같은데 이젠 인정해주지 않는다. 본인이 계속 체크할 것이고 필요하면 증거로 만들어서 제출도 할 것이다."

글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두려움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해고'부터 떠올린다. 중간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잘못을 했으니 한 번더 걸리면 자르겠다'는 이야기로만 보인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애인과 이야기하고 글을 읽어보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전혀 나와 동료들을 배려하지 않는 글이다.


'수고한다'는 말한마디 없이 바로 책임추궁부터 시작한다. 재고가 맞지 않는 것은 전산 문제, 물건 파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유독 우리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을 본인이 '이해할 수 없다'고 까지 말한다. 어이가 없다. 그렇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본인이 혼자서 주5일 동안 일을 하면서 빈틈없이 일했으면 좋겠다. 어디 본인은 실수하나 없이 본인 표현에 따르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말에도 청결을 신경쓰라고 하지만 수백명이 넘는 손님들이 몇시간만에 난리치고 지나간 그 자리를 쉽게 청소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런 고려는 점장의 머릿 속에 없다. 아니, 그런 고려를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야기한다. 그 뒤에 사고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는 이 부분이 이 글을 쓰게 된 중심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근 9개월동안 박살나서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고, 우리도 위험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고치지 않고 버티던 회사가 사람이 다치자 문을 교체하겠다고 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불필요한'지출을 하게되었으니 불필요한 지출을 하게 만든 원인을 찾아서 수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강한 감시와 압박을 하겠다는 선언도 함께 한다. 평소에 꾸준히 문제가 될 만한 원인들을 수집하겠다는 노골적인 이야기까지도 한다. 직접적인 원인이 없다면 간접적이든 뭐든 만들어서라도 '원인이 있게끔' 해야한다.


아마 이런 식으로 본사에서 점장을 엄청나게 공격했을 것이다. 점장이 그들의 사고대로 일종의 '시말서'를 작성했을 것이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근무태도와 재고다. 평소에 재고가 맞지 않을 정도로 엉망으로 일하는 가게이니 문으로 인한 사고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 눈에 척봐도 말도 안되는 소리다. '문이 고장나서 손님이 손을 다쳤는데, 그것이 근무태도와 재고 때문이다.'라는 누가봐도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점장이라는 권력을 가지고서 아무런 제약없이 하고 있다.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알겠습니다'는 말 이외에 저 글에 대해서 아무것도 반박하거나 이야기할 수 없다. 심지어, 저 글의 마지막에는 글을 읽고 답장을 (물론 이 글에 동의하고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서약의 의미와 같은)하지 않으면 무려 '원인 제공자'로 간주하겠다는 협박도 한다.


조직이 없고, 같은 가게에 있지만 각자가 개인으로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점장과 본사라는 엄청난 '권력'에 대응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정말로 가게를 그만둘 각오로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힘들다. 이럴 때면 또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단 2~3명이라도 알바노조의 조합원이었다면, 함께 기자회견하고 일할 동료가 있었다면 이 말도안되는 사태를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급하게 '알겠습니다'라고 댓글달지 않는 투쟁이라도 했을 것이다. 함께라는 것은 혼자일 때보다 몇배의 상상력과 실천력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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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올라온 가게에 주말에 출근해야 한다. 일하는 내내 손님으로 위장한 본사직원들을 신경쓰면서 몇배 강도의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을 해야할 것이다. 매장안에 있는 CCTV들을 의식하면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 중에 회사의 규정이나 회사의 상식에 비추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없는지 스스로 검열 해야한다. 동료와 포스기 앞에서 짧게라도 이야기하는 것도 신경쓰여서 힘들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견제하는 구조가 차근차근 만들어져 갈 것이다. 누군가를 '원인 제공자'로 만들지 않으면 바로 '내'가 원인 제공자가 된다. 적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늘어난다. 무기력한 개인이었던 나와 동료들은 이제 이기적이고 잔인한 개인이 되어야만 한다. 점장이 보낸 글 하나는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점장의 글이 가지는 딱 그 파급력만큼 우리는 무기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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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는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모든 수당을 빠짐없이 지급한다. 근로기준법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항상 '준법의 댓가'를 요구한다. 편의점 알바 업계에서 최상의 대우를 받으니 이번처럼 문제가 생기면 근무태도나, 청결 등을 들먹이면서 책임을 다하라고 그들은 이야기하고 우리는 협박당한다. 처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검수가 큰 문제가 되고, 애초에 제대로 맞추지 않았던 재고가 우리의 탓이 되어있다. 지금처럼만 하라고 하던 청소는 가게의 가장 큰 결점이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에 맞추어서 일하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변한 것은 상황이 아니다. 회사와 점장이 본격적으로 본인들의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대응할 힘이 없으니 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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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언급한 최규석의 만화 송곳에서는 이런 대사도 등장한다.

"살아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 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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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존엄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난 권리를 야금야금 빼앗기기고 있지만 맞서 싸우지 못하고 있고, 저들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존엄하게 대하지 않는다. 그저 속상하고 가슴아프다. 내가 좀 더 용감하고, 좋은 훌륭한 조직가였다면 이럴 때 노조를 제안해서 함께 싸울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부족해서 권리를 빼앗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싸우지 조차 못하는 것은 내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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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쩍한 기분을 달래주는 꽃다지의 노래

https://youtu.be/XhyQK3Vu2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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