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메뉴얼과 감정노동

편의점 노동자들이 겪은 상상 이상의 감정노동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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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편의점이든 손님을 응대하기 위한 필수 멘트들이 있다. 우리 가게의 경우에는 총8단계의 메뉴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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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서오세요 이마트24입니다."

2."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3."봉투20원인데 필요하신가요?"

4."할인이나 적립카드있으세요? 저희 KT멤버쉽 할인되고, 이마트신세계포인트 적립됩니다."

5."카드/현금 받았습니다."

6 "영수증 필요하세요?"

7."카드 영수증 여기 있습니다."

8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이런 멘트들은 전적으로 '손님들'을 위한 것이다. '소비자'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경우의 수를 메뉴얼화 한 것이다. 또한 KT멤버쉽나 이마트 적립, SSG페이 등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서 메뉴얼을 추가하기도 한다. 이전에 SSG페이(신세계그룹에서 사용가능한 간편결제수단) 가입률 높이는 기간에 어플을 깔고 카드 등록까지 해야하는 SSG페이를 '가입하시겠냐' 고 묻고 앞에서 가입시키는 일도 했었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보험판매까지 함께한 느낌이었다. 겨울에는 케잌이 많이 들어와서 케잌을 판매하는 권유도 했다. 손님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역할과 소비자에게 혜택을 알려주는 역할 그리고 그 속에 본인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것들까지 응대 메뉴얼에 포함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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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얼은 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진 않다. 손님이 아주 많으면 입이 좀 아프거나, 목이 따갑긴 하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그저 말하는 것만 하라고 하면 하루종일도 할 수 있는 정도이다. 문제는 내가 메뉴얼을 이야기하면 손님들이 반응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특별한 시기가 아니면 총8번의 멘트를 손님에게 던진다. 우리는 직영이고 특별 관리 매장이라 금액이나 물품에 상관없이 모두 메뉴얼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800원짜리 껌을 사도, 2천원짜리 과자하나를 사도 저 8가지 메뉴얼을 모두 이야기해야 한다. 이 중에서 인사 멘트인 1278을 제외하고 4가지 멘트에는 손님들이 답을 해야한다. 비닐은 필요한지, 할인이나 적립카드는 있는지, 영수증은 필요한지 등이다. 그외에 나무젓가락 스푼의 유무와 갯수도 물어봐야한다. 특별하게 친절한 손님이 아니면 대부분의 손님들은 귀찮아하면서 답한다.


반응으로 '아니요' 정도로 답하면 정말 감사하다. '됐어요.' '필요 없어요'는 약간 짜증이 난다. 최고는 '무시'이다. 아예 답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해도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얼른 계산이나 하라는 투로 내 손만 쳐다본다. 그러다 계산이 다 끝나면 "어? 봉투 왜 안넣어줘요?"라고 말한다. "아까 손님께서 봉투 안한다고 하셔서 안 넣어드렸습니다 ㅎ"고 하면 "난 대답 안했지 안한다고 한 적은 없었는데요? 넣어주세요." 이런 경우엔 정말 화가난다. 여기서 20원 주세요라고 버티면 컴플레인이 들어오거나,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봉투를 꺼내서 물건을 넣고 얼른 보낸다.


정말 극한의 감정노동이다. 사실, 손님이 많지 않은 가게라면 계산과 계산 사이의 텀이 꽤 길어서 정신적인 타격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가게는 8시가 넘어가면 손님이 정말 해일처럼 몰려들어와서 정신적인 회복을 할 텀이 생기지 않는다. 손님이 가장 많은 토요일 오후에는 두명이서 꼼짝않고 4시간동안 계산만 해야한다. 그 동안 대응 메뉴얼을 통한 감정노동은 끝도 없이 발생한다. 감정적으로 회복할 시간은 없고, 점점 화가나고 불안이 느껴져서 짜증도 난다. 이런 상태가 되어도 화는 낼 수 없고, 억지로 입고리를 올려 웃으면서 대응 메뉴얼을 이야기하고 손님들의 요구를 받아주어야한다.


정말 힘들다. 차라리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면 내 스스로 시간과 일을 조절하면서 할 수 있다. 이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노동이라 스스로 조절하기가 불가능하다. 너무 심해지면 약을 먹거나,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이야기하고 잠시 그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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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얼만 나를 힘들게 한다면 그나마 괜찮다. 인간사가 다 그렇듯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메뉴얼 뿐이 아니다. 손님들은 항상 술에 취해서 가게를 엉망으로 만들고, 물건을 깨부순다. 기껏 청소 다해놓은 바닥이 엉망이 되어서 울며겨자먹기로 다시 걸레질을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바닥에는 발자국이 가득해서, 다음날 점장이 보고서 청소를 제대로 하라고 톡이 온다. 그 깨진 물건을 치우느라 바빠서 어떤 물건인지 알 수도 없어서 가게 재고가 하나 둘씩 구멍이 생긴다. 점장은 그것 가지고 또 재고가 빈다고 난리다. 뫼비우스의 고통이다. 손님이 나를 직접 스트레스 받게 하는 것이 아니면, 물건을 박살내서 간접적으로 점장이 나를 스트레스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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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보면 인간에 대한 온갖 정이 전부 떨어진다. 아무리 술을 먹지 말라고 이야기해도 술먹고 병을 버리지도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 고른 물건을 제자리에 넣어두지 않고 이상한 곳에 숨기는 사람들. 대응 메뉴얼에 대답한번 안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물건 깨부수고 아무말도 없이 가게를 나가버리는 사람들. 술에 취해서 반말하고 시비거는 사람들. 담배달라고 반말하고 돈 집어던지는 사람들. 인간 군상의 지옥도가 20평 남짓한 이 가게안에서 모두 펼쳐진다. 내가 이 지옥도의 염라대왕이면 좋겠지만, 난 그곳의 가장 말단 직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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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일이 쉽다고 '꿀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이 지옥도에서 단 이틀이라도 근무를 해보았으면 좋겠다.육체가 아니라 정신이 파괴되어서 육체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손님을 위해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스트레스와 고통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기계에서 모든 멘트가 나오게 하거나, 포스기에 메뉴얼을 붙여서 읽고 스스로 하도록 하면 좋겠지만 돈이 많이 드니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스트레스 받으면서 말을 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 메뉴얼이 하나 늘어난다고 우리의 임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건비 인상을 요구할 수 없고, 단체로 의견을 전달할 수는 창구나 힘이 없어서 이런 일들은 더욱 악화된다. 노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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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극심한 감정노동에 쳐해진 노동자들에게는 6개월에 한번씩이라도 정신감정을 받도록 회사에서 돈을 지원해주어야 한다. 스트레스로 질병이 생기면 업무상 상해로 판단하고 산재요양이라도 하게 해주어야 한다. 손가락이 짤리고, 발가락이 뭉게져야만 산재가 아니다. 다행히도 요즘은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감정노동'에 대한 산재인정들이 조금씩 되고 있다. 그것도 아직은 대형마트의 이야기이다. 편의점에 그것이 적용될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싸움이 필요할까.


사진출처 : http://press.uos.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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