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감성지능, 나를 보호하기 위한 능력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by mamang


내가 입학했던 국민학교의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뀔 무렵이었던가. 아니면 조금 더 지난 후였던가. IQ가 아닌 EQ를 학생들의 뛰어남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유행했던 시절 말이다. 각종 학습지 광고, 텔레비전에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내가 IQ와 EQ가 가진 명확한 차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들었던 기억이 없다. 다만 EQ가 최근 트렌드라는 것 말고는 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학교에서 IQ 테스트를 했던 날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시험 보는 날처럼 짝꿍과의 책상을 띄어 앉았던 것도 같고, 뭔가를 열심히 풀었는데 꿈속에서 문제를 푸는 것처럼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문제들로 가득했던 것 같다.


선생님들은 IQ라는 게 내 머리가 좋은지 좋지 못한지를 판단해주는 근거라고 했다. 번호순대로 호명되어 각자의 결과지를 받아들게 되었고, 내 기억으로는 그때부터 '머리가 좋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자격지심에 휩싸였던 것 같다.


각자의 IQ 결과지를 나눠 받은 그날 이후, 두 자릿수의 IQ 결과를 받은 아이들은 '머리가 좋지 못한 아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는 겨우 '중간쯤 가는 아이' 또는 '노력하면 될 아이'라고 분류 당했다. 선생님들은 머리 좋은 아이들을 예뻐하고 그들의 밝은 미래를 미리 보고 온 사람처럼 귀하게 대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흘러 내 남동생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누나. 누나도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너는 머리가 안 좋으니까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해.'라고 했었어?" 나는 즉시 대답했다. "응. 맞아. 그래서 나는 '아, 내가 머리가 안 좋은가보다' 했지. 별로 속상하지도 않았어. 진짜 내가 봐도 내 머리는 별로 안좋은 것 같았거든."


"근데 큰누나, 둘째 누나는 '머리가 좋은 데 노력을 왜 안 하냐'고 잔소리를 들었다던데?" 동생이 물었다. "그러게. 우리만 머리가 안 좋은 건가? 그것도 아니면...." 우리의 대화는 뜻밖의 결론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서로의 머리가 좋지 않다는 한탄을 하던 우리가 항상 대화를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부모님이 우리 사 남매를 키우면서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언니들'과 '머리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지속해서 듣고 자란 우리'로 나뉘는 두 비교군에 대한 장기간의 실험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결론 말이다.


동생과의 대화 끝에 머리가 좋다는 건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것처럼 세상 사는 게 조금 더 쉬워지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가 보면, IQ가 아이들을 나누는 폭력적인 방법이었던 건 분명하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두고 제멋대로 '이런 아이가 똑똑한 아이', '이런 아이가 훌륭하게 자랄 아이'라고 판단, 평가하곤 했다. 그 후 몇년 되지 않아 티브이에서는 EQ 어쩌고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는 그 무렵 또 한 번의 요상한 EQ 테스트를 거치게 된다. EQ 테스트에 응하기 전에 IQ와 EQ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선생님들이 해주셨던 기억은 없지만,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가 착한 어린이니까 대부분의 아이가 열심히 풀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듯 EQ 테스트는 그 결과 자체가 IQ와 비교해 아이들의 뇌리에 박히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그 후에도 IQ가 두 자리였던 아이들이 놀림당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아무도 그들의 EQ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EQ 따위는 왜 측정한 걸까 이해되지 않았다.


만약 EQ가 높은 친구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해 충분히 인정받고 공감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그게 나였다면 어땠을까. 당시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EQ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당장 시험을 보는데에, 문제집을 푸는 데에 IQ가 가장 좋은 점수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선생님들 또한 EQ에 대한 명확하고 정확한 이해가 없으셨던 것 같다. IQ가 높은 아이들은 예쁨을 받았지만, EQ가 높은 아이라고 해서 받는 특별 대우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최근 마인드풀니스, 마음챙김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내가 EQ에 대해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최근까지 EQ는 '공감 능력'에 대한 지수라고 믿어왔던 것이었다.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는 구글의 엔지니어 '차드 멩 탄'이 구글 직원 교육 프로그램인 '내면 검색' 교과 과정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책 도입부에서 저자는 마음챙김의 장점과 구글의 많은 직원이 이를 통해 얻게 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요약해준다. 이와 더불어 구글의 '내면 검색'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해주며 독자들이 스스로 실천할 방법을 안내해준다.


그는 제1장 '당신의 감정을 관리하라'를 통하여 감성지능과 그 개발법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피터 샐로베이'와 '존D. 메이어'의 말을 인용해 감성지능을 이렇게 정의한다.


감성지능 : 자신과 타인의 기분,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 사이를 구분하며 이 정보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지침으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


그렇다면 내가 앞서 언급한 '타인의 감정을 잘 느끼는 능력'은 무엇일까.


공감 : 타인의 상황과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능력


공감 능력만으로 '감성지능'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감성지능 *
[공감] '자신과 타인의 기분, 감정을 이해하고'
+
'그들 사이를 구분하며'
+
'이 정보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지침으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


저자는 감성지능은 세 가지 중요한 기술(뛰어난 업무성과, 탁월한 리더십 그리고 행복의 조건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서 '감성지능이 지속적인 행복을 위한 조건'을 갖추게 해준다는 점을 설명해준다. 결론적으로 감성지능은 개발이 가능한 부분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 행복한 상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내용에 대해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만, 나의 경우 마음챙김의 핵심은 공감 능력을 높이는 것 자체만이 아닌 '나 자신을 보호' 하면서 '공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공감' 능력은 높지만 '나 자신을 보호'하며 공감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던 지난 나의 경험 때문이다.


나의 IQ와 EQ 모두 중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반면에 공감능력은 높은 편이라 거의 항상 머리속이 바쁘고 피곤했던 일상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나의 감정에 대하여 기억할 수 있을 어린 시절의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은 항상 시끄러웠다. 할머니, 아빠, 엄마, 언니들이 다였던 우리 집을 벗어나 유치원에 다니던 그 시절부터 친구들의 감정, 친구들이 입고 오는 옷, 가져오는 간식, 선생님들이 친구들과 나를 대하는 모든 것들에 촉수가 반응하고 때때로 상처와 슬픔들을 고스란히 느꼈던 것 같다. 초등학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갖은 상처와 슬픔들은 내가 소화하기에 너무 다양한 종류였으며 복잡한 형태였다.


초등학교 무렵에 할머니와 함께 자던 방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노라면 한 번씩 다가오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그것을 대변해준다. 예를 들면 잊을만하면 한 번씩 '여기가 어딜까', '나는 누구일까' 하는 물음이 떠올랐고, 시간이 한참 지나야 그 답답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종종 그 물음과 증상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만약 성인이 되어서가 아닌 어린 나이의 내가 나를 보호하면서 외부의 자극들을 공감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면에서 마음챙김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 있는 '서로를 느껴주는 마음'을 소중하게 살려두고 '각자를 보호하는 방법'을 익혀가는 게 아닐까.


외부의 자극에 훤히 마음을 드러내놓고 그렇게 수년을 지나왔다. 그리고 3년 전, 심신의 단련을 위해 요가 지도자 과정에 등록했다. 적금을 깨야 할 정도로 비싼 값의 등록금이었지만 왠지 이 방법 말고는 없을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과정이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함께 읽었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3개월여의 과정을 마친 후 마지막 날 각자의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세일러문이 변신하기 전의 몸이었던 것 같아요. 저의 온몸이 개구리의 피부, 옷을 입기 전의 세일러문의 몸처럼 아주 다치기 쉬웠거든요. 지금은 제 몸에 옷이 입혀진 것처럼 조금은 든든해졌어요."


저자 차드 멩 탄은 행복이 마음의 초기 상태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마음이 평온하고 맑아지면 초기 상태로 복귀하게 되는데 그 초기 상태가 바로 행복이라는 이야기였다.


'현재에 있음'을 오롯이 느끼는 마음은 매번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익숙해지는 수련법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쓰지 않으면 잊히는 언어처럼 말이다.


돌아오는 2주간 저자가 제시하는 마음챙김의 실천법을 통해 그 행복한 상태에 가까워지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실천해보려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를 보호하면서 상대방을 마음껏 느껴주는 연습을 완전히 익히고 싶다. 물론 내가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 모두 서로를 보호하며 기꺼이 상대방을 느껴줄 수 있는 행복한 상태로 존재하길 바란다.


우리의 앞이나 뒤에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것에 비하면 지극히 하찮은 것들이다.
-랠프 왈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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